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최고 유행어는 ‘영미’였다. 여자 컬링 국가대표 ‘팀 킴’의 경기 도중 스킵 김은정이 목청 높여 “영미”를 부른 고주파 외침은 국민들을 TV 중계 화면 앞으로 끌어당긴 마법의 주문이었다. 하지만 컬링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그 친숙한 이름을 더 이상 경기장에서 들을 수 없다. 8년 전 한국 컬링에 역사적인 올림픽 은메달을 안긴 팀 킴의 버팀목 김영미(35)가 최근 은퇴했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경북 의성컬링센터에서 만난 김영미는 온 국민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던 시절을 회상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김)은정이가 제 이름을 많이 부를수록 다급하게 닦아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당시를 되짚은 그는 “때로는 ‘또 나야?’ 싶어 힘든 순간도 있었다”며 미소 지었다.
‘꽃 영(榮)’에 ‘아름다울 미(美)’를 쓰는 그의 이름은 예쁜 꽃처럼 자라라는 의미로 할아버지가 지어줬다. 어릴 땐 옛날 이름 같아 ‘초롱’으로 개명할까 고민했다. 김영미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름이 됐으니 안 바꾸길 잘한 것 같다”고 했다.
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에서 팀 킴이 탄생한 과정은 한편의 만화 같다. 2007년 김영미가 의성여고 동창 김은정과 방과 후 활동을 고민하다 컬링을 고른 게 출발점이었다. 이후 물건을 전해주러 온 친동생 김경애와 그의 친구 김선영이 추가 합류하며 전설의 라인업이 꾸려졌다. 올림픽 당시 영국 가디언은 팀 킴을 ‘갈릭 걸스’라 소개하며 대서특필했다. 로이터는 의성 마늘밭까지 찾아가 그들의 성장 과정을 짚었다. 김영미는 “마늘을 많이 먹어 그런지 멤버 모두 잔병치레가 없었다”며 웃었다.
평창올림픽 직후 팀 킴 열풍을 타고 광고 제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김영미는 “광고 출연을 요청하는 제품 목록이 A4 용지 3장을 빼곡히 채웠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100건 정도 됐던 것 같다”면서 “그 중 실제 촬영으로 이어진 건 청소기와 마늘햄 2편 뿐이다. 예능 출연도 ‘무한도전’ 하나만 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소속팀(경북체육회) 지도자가 “선수들이 유명해지면 통제가 힘들 수 있다”며 앞장서 계약을 막은 탓이다. 그해 팀 킴은 지도자의 폭언과 부당한 처우를 알리며 부조리에 맞서 목소리를 냈다. 2021년 소속팀 재계약 불발 후 강릉시청에서 새출발했고, 2022년 세계선수권 준우승과 함께 건재를 과시했다.
김영미는 “지금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느냐?’며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다. 20년간 컬링을 했는데, 햇수로 따지기 힘들 만큼의 사랑을 받았다”고 했다.
팀 킴은 이달 초 해체를 결정했다. 지난해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 이후 멤버들끼리 터놓고 대화를 나눈 끝에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지난해 딸을 얻은 김영미는 은퇴 이후 진로를 고민하다 처음 스톤을 잡은 고향으로 돌아와 의성초 컬링 코치를 맡았다. ‘제2의 영미’를 육성 중인 그는 “어릴적 꿈이 유치원 교사라 아동학을 전공했다”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하다. 풍족하진 않아도 15년째 아동 단체에 기부 중”이라고 했다.
팀 킴 나머지 멤버들은 현역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김은정은 의성군청, 김경애는 전북도청으로 옮겼고 김선영과 김초희는 강릉시청에 남았다. 다음달 의성군수배 전국대회에 서로 다른 3팀으로 나뉘어 참가할 예정이다. 김영미는 “일등은 3팀 중 아무나 하면 된다”며 쿨한 중립을 선언했다.
요즘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이호성에 푹 빠져 종종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를 찾는다는 김영미는 “팀 킴 멤버들과 최근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누다 평창올림픽 10주년이 되는 2년 뒤 함께 모여 기념 사진을 찍기로 했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