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문홍규의 과학 산책] 천문

중앙일보

2026.03.30 08:0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이 좌표 근처에 새로운 행성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1846년 프랑스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위르뱅 르베리에가 쓴 편지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한 갈레는 편지를 읽고 해왕성을 찾아내 대영제국의 콧대를 꺾는다. 세 나라가 행성 발견에 사활을 걸던 시절, 영국의 천문학자 겸 수학자 존 애덤스는 그 몇 달 전 답을 손에 쥐고도 다 잡아놓은 물고기를 놓친다. 관료주의 탓이다. 73년 뒤, 전쟁 중인 영국은 징집 대상이던 에딩턴의 아프리카 일식 관측계획을 승인했다. 덕분에 적국 독일 과학자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입증해 천문 강국의 자존심을 지킨다.

2008년 4월 한국천문학회장이던 강영운 교수는 예사롭지 않은 일화를 들려줬다. “일본천문학회 100주년 기념행사에 다녀왔거든.” 참가자들 사이에 학회 창립 연도가 화제에 올랐다고 한다. 1820년 영국 왕립천문학회가 닻을 올린 뒤, 독일과 캐나다가 뒤따랐고 프랑스와 미국·일본·이탈리아가 합류했다. “아, 그게 G7이로구나 하고 우리도 깜짝 놀랐어!”

세계 질서를 이끄는 G7은 이미 1~2세기 전 천문학의 효용에 눈을 떴다. 찰스 2세의 말처럼 이들은 정확한 항법으로 전 세계 해로와 보급로의 규칙을 세웠다. 이어 시간 표준을 정하고, 아날로그 GPS를 완성했다. 덕분에 군함과 상선을 더 빠르고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었다. 별 보던 망원경은 적함 찾는 포대경으로, 궤도 역학은 탄도학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우주항법의 시대를 연다. 함포 조준경을 깎던 니콘과 캐논은 8.2m 스바루 망원경과 초광시야카메라(HSC) 제작에 참여했다.

한국천문학회는 1965년 춘분 날 돛을 올렸다. 천문학자는 80억 광년 밖 퀘이사(초기 우주의 발광 천체) 300여 개를 기준좌표로, 군 GPS도 이를 보정해서 쓴다. 천문학 연구성과가 전쟁에 쓰이는 현실이 서글픈 봄이다.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