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수백 조원의 적립금이 모이면 판이 커지고 이해도 얽힌다. 질문은 하나다. 이 돈은 누구의 것인가.
지난 2월 6일 ‘퇴직연금 기능 강화를 위한 노사정 TF’의 공동선언문은 정부·노조·금융회사의 이해를 나열했지만 실질적 조정은 없었다. 공공기관 개방형, 노사 연합형, 금융기관 개방형 등 세 가지 형태를 병렬 제시한 수준이다. 논의의 중심도 ‘수익률’에서 ‘통제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명분은 노후 보장, 현실은 권한 경쟁이다.
문제의 뿌리는 구조에 있다. 적립금이 개인 계좌를 벗어나 공동 기금으로 인식되는 순간 착시가 시작된다. 자금이 공공재처럼 보이고 권한은 커지고 책임은 흐려진다. 손실이 나도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다. 의사결정은 집단화되고 개인의 이해는 희석된다. 주인이 많아질수록 주인은 사라진다.
이해관계자들의 유인은 분명하다. 정부는 기금을 경기 대응, 산업 지원, 사회적 과제 해결 등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 금융회사는 안정적 자금과 수수료 기반을 원한다. 노조는 거버넌스 참여로 영향력을 확보하려 한다. 모두가 선의를 내세우면서 지분을 겨냥한다. 진짜 이해관계자인 사용자와 근로자의 목소리는 약해진다. 자금을 납입하고 결과를 감내하는 주체가 의사결정에서 멀어진다.
선행 사례의 교훈은 단순하다. 네덜란드의 집단형 확정 기여(CDC) 모델은 노사가 공동으로 기금을 감시하고 정부는 조력자 역할에 머문다. 금융회사는 수수료 경쟁이 아닌 운용 실력으로 평가받는다.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팔이 닿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둔다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으로 정치적 개입을 배제했다. 반대로 정치 개입이 깊어진 사례는 대체로 같은 결말을 맞는다. 수익률이 흔들리고 신뢰가 무너진다. 운용은 전문성의 영역이고 개입은 정치의 언어다. 둘이 섞이면 결과는 뻔하다.
기준은 단순해야 한다. 첫째, 수익률 중심주의다. 모든 의사결정은 장기 실질 수익률에 연결돼야 한다. 둘째, 수탁자 책임의 명확화다. 실패의 귀책이 분명해야 성공의 유인이 생긴다. 셋째, 역할 분리다. 운용과 감독, 정책과 집행을 뒤섞지 말아야 한다. 넷째, 개인 선택권 보장이다. 집단의 효율이 개인의 권리를 잠식해서는 안 된다.
지금 논의는 빠르게 달리고 있다. 그러나 속도보다 방향이 먼저다. 퇴직연금은 쟁탈의 대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미래 소득이다. 오늘의 제도 설계가 수십 년 뒤의 삶을 결정한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돈은 누구의 것인가. 그 답이 분명해지는 순간, 길도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