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 항공우주산업(KAI)에서 지난 25일 한국형 전투기 KF-21 양산 1호기(보라매) 출고식이 열렸다. 자주국방을 향한 집념이 국민 모두의 가슴에 감동과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이었다. KF-21의 출고는 쾌거이자 성과이지만, 아직 안주하기엔 이르다.
국산 전투기 개발사업은 2001년 3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청사진을 밝혔고, 2015년부터 KAI 연구진 등 6만4500여 명이 참여했다. 1호기가 출고되기까지 모두 6대의 시제기로 지상 실험 955회, 비행 시험 1601회를 진행했다. 이번에 출고된 양산 1호기는 성능 확인 과정을 거쳐 오는 9월 공군에 실전 배치된다.
양산 1호기 출고는 역사적 쾌거
기체개발 주권이 전략개발 주권
첨단 항공엔진 국산화도 이뤄야
지난 세월 대한민국은 주어진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전술국가’였다. 스스로 판을 짜는 ‘전략국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세계 군사력(재래식 기준) 5위, 코스피 6000시대 개막 등으로 국격은 높아졌지만, 전략적 자율성은 여전히 그에 못 미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반세기 넘게 조국의 영공을 수호했던 F-4 팬텀과 F-5는 이런 전술국가의 틀 안에서 운용됐던 기체들이었다. 이 기체들은 우리 정비사들의 눈물겨운 헌신으로 세계에서 손꼽힐만한 장기 운용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빌려온 칼’이라는 근본적 한계 앞에서 변화무쌍한 현대전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하기엔 제약이 많았다.
특히 최근 중동전쟁과 러·우전쟁을 보면 현대전은 다영역 작전과 전자기전이 결합한 복합 전장으로 변화했다. ‘무기를 설계하는 자가 전장을 설계한다’는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가 됐고, 기체 개발의 주권이 전략 개발의 주권이 되고 있다.
바로 그 전환점에 KF-21이 서 있다. 즉, 대한민국이 전술 시대의 문법을 지나 진정한 전략국가의 위상에 도전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KF-21 보라매는 단순히 다재다능한 고성능 기체를 넘어서 AESA 레이더 등 공중 전장을 우리가 설계할 수 있는 주도적 역량을 갖춘 진화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기술 패권국들은 여전히 선진국이다. 기술 격차가 국가의 체급을 결정하는 냉혹한 질서는 여전히 불변이다. 국가의 제일 덕목인 안보 영역은 원천기술 국가들이 국제무기거래규정(ITAR)과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 더욱 촘촘한 빗장을 걸고 기술 이전을 통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첨단 항공엔진은 ‘기술의 왕관’이라 불릴 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 이를 독자개발 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KF-21도 엔진은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첨단 엔진의 국산화는 진정한 전략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숙명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가 묘목을 심을 때 선진국은 이미 거대한 성목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회의론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짙은 의구심을 이겨내고 자체 개발로 만들어 비상한 KF-21 보라매의 성공 경험이 강력한 자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우리 군의 확고한 의지, 방산업계 전반에 축적된 역량,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의 협력 생태계가 순차적으로 맞물려 가고 있고, 기술 자립의 기반도 전례 없이 탄탄하다.
첨단 항공엔진 국산화는 단순한 기술 자립을 넘어 국가 역량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촉매가 될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유무인 복합체계와 고성능 무인기 개발을 통해 공군 전력을 비약적으로 강화하고, 산업적으로는 민간 영역으로 확산해 첨단 선박 엔진, 산업용 가스터빈, 신소재 산업 등 연쇄적 성장을 끌어낼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기술적 파급효과는 최대 18조원을 상회할 뿐만 아니라 한국을 기술 선도국의 반열에 올려놓는 전략적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말이 있다. 스스로 멈추지 않고 강해지려는 자강불식 정신이 KF-21의 양산으로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국방부는 막중한 사명감으로 산업통상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사청 등과 범부처 협의를 주도하며, 취약 분야에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신뢰를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