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첨단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AI 인재 경쟁도 거세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겠지만, 해외 인재를 유치하려는 국가 간 경쟁도 뜨겁다. 한국도 지난해 9월 미국 비자 사태 이후 ‘해외 인재 한국 유치(Brain to Korea)’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해외 인재를 유치하려 해도 연봉 수준만으로는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큰 나라들과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질적 인센티브로 경쟁할 수 없다면 오히려 매력으로 승부를 보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한국은 해외 인재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나라일까
?
연구 인센티브에 K컬처 결합
체류하고 싶은 환경 조성하고
‘한국 와서 일하면 결국 잘된다’
디딤돌 국가 이미지 심어줘야
국제정치 키워드로 떠오른 매력 매력에 대한 학술적 논의는 2005년경 국내 학계에서 시작됐다. 당시 유행하던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번역하면서 생경한 음차어보다는 우리말의 뉘앙스를 살리고자 했다. 그 이후 매력이라는 말은 21세기 국제정치의 권력 전환을 담아내는 키워드로서 공공·문화외교 분야에서 널리 사용됐다.
이러한 매력은 무엇으로 구성될까
?
당연히 매력은 실력을 바탕으로 한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AI·바이오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이는 스마트 제조 강국의 매력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매력의 요체는 역시 문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과 BTS 컴백 공연의 흥행은 큰 매력 자산이다. 그 저변에 깔린 사회문화 전반의 매력도 탄탄하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K푸드를 먹으러 여행 가고 더 나아가 살아 보고 싶은 나라이기에 손색없다. 그런데 향후 매력 전략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 몇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최근 매력 정치의 양상이 매우 복잡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국제협력을 논하던 2000년대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갈등의 요소가 매력 정치의 전면에 부상했다. 소프트파워보다는 ‘샤프파워(sharp power)’를 내세우고 매력 발산보다는 오히려 중상비방이 더 먹히는 세상이 됐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거치면서 자신을 뽐내는 매력 공세보다는 남을 헐뜯는 험담 공세가 더 두드러졌다. 게다가 AI로 생성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통되는 허위 정보는 개인의 명예훼손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교란하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무기가 됐다. 한국 사회도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단순한 매력 발산의 역량을 넘어 중상비방을 막아내는 방어력도 매력의 필수 역량이 됐다.
‘내 편을 모으는 힘’의 네트워크 둘째, 매력을 상호 간에 형성되는 네트워크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사실 매력은 고정된 자원의 보유라기보다는 사람들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관리하는 힘이다. 그야말로 ‘내 편을 모으는 힘’이다. 따라서 매력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발산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맥락에 투사돼 좀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야 더 세진다. 그동안 제조업과 첨단기술 분야에서 쌓은 실력은 최근 한국이 매력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기반으로 작동한다.
물론 아무리 실력 기반의 매력이라도 문화적 친화성과 결합하지 않으면 그 네트워크를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해외 인재를 모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들을 머물게 하는 뭔가 다른 차원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K컬처에 기반을 둔 문화 경험의 공유가 해외 인재의 체류로 연결되고, 결국에는 연구와 삶을 병행하는 선택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렇게 생성되는 네트워크는 그 자체가 매력 자산이다.
셋째, 단순히 많은 인재를 데려오기만 할 것이 아니라 한국에 온 해외 인재들이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소외되지 않고 활동할 건설적 경로가 제시돼야 한다. 사실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한국은 ‘중심 허브’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중개 허브’ 정도는 되는 나라다. 이러한 한국에 와서 일하면 좋은 기회를 얻어서 더 잘 돼서 간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국내 프로야구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미국 마이너리그 출신 외국인 투수들이 열 배가 넘는 연봉을 받고 다시 미국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스토리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그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고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테스트베드였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한국이 제공하는 연구 토양은 해외 인재들이 차근히 실력을 쌓아 미래로 도약할 발판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그야말로 ‘디딤돌 국가’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진정한 매력 국가로 탈바꿈해야 끝으로 오늘날 매력 정치에서 제도·규범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여태까지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자기 나름의 정치경제 모델을 자랑거리로 삼아왔다. 아울러 연구의 자율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규범도 꾸준히 추구해 왔다. 그런데 2024년 12·3 계엄 사태와 그 이후의 정치 상황은 이러한 제도·규범의 매력에 치명타를 가했다.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고 경제도 흔들리면서 한국의 행보는 보편적 규범에서 멀어지는 듯 보였다. 다행히도 빠르게 회복하기는 했지만, 해외 인재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이제는 더 이상 본받고 싶은 나라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은 효율적이면서도 바르게 살고 있어 닮고 싶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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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답은 결국 우리의 존재론적 삶 자체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치열하게 전개되는 AI 인재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실력 자원을 양성하는 노력뿐만 아니라 동태적이고 복합적인 매력 전략도 필요하다. 한국이 매력을 발산하려면 소프트파워의 역량을 기를 뿐만 아니라 샤프파워의 공세에도 대응하고 건설적 네트워크도 구축해야 하며 제도·규범도 바로 세워야 한다. 이를 지원하는 과학기술외교의 추진과 국내 추진체계의 정비도 필요하다. 결국 AI로 대변되는 첨단기술 분야의 인재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한국 스스로가 진정한 매력 국가로 탈바꿈하는 것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