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서 만든 게 경제고통지수(Economic Misery Index)다. 물가는 오르는데 일자리가 없다면 삶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요즘 ‘트럼프 고통지수(Trump Pain Point Index)’라는 게 나왔다고 해서 경제고통지수처럼 트럼프로 인한 경제 주체의 고통을 지수화한 것으로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세상이 아니라 ‘트럼프’가 느끼는 고통을 지수화해 조변석개 예측불가인 트럼프 정책을 조금이라도 읽어내려는 시장의 안간힘이었다.
주가 빠지고 금리·물가·유가 올라
트럼프 정책 바뀔 가능성 최고조
신뢰자본 잃으면 정책은 안 먹혀
미국의 민간 경제 조사 업체인 BCP리서치가 설계한 트럼프 고통지수는 S&P500 지수 역수익률, 미 국채 10년물 금리, 30년 주택담보대출 금리, 휘발유 선물, 인플레이션 기대를 반영한 파생상품(소비자물가지수 스와프), 대통령 지지율의 한 달 변화를 담았다. 결국 주가·지지율이 빠지고 금리·물가·유가가 오르면 트럼프가 고통받는다는 거다.
트럼프가 진짜 고통을 느낄까.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정신건강 전문가 233명이 뉴욕타임스(NYT)에 공개서한을 게재했다. 트럼프는 심각하고 치료할 수 없는 인격 장애인 ‘악성 자기애’ 증상으로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트럼프는 “그저 재미 삼아(just for fun)” 이란을 공격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그도 정치인이다. 11월 중간선거 패배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거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하면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할 테니까. 그래서 트럼프 고통지수가 임계점을 뚫고 치솟을 때 ‘트럼프는 언제나 물러난다’는 타코(TACO)가 오고 정책이 바뀐다. 도이체방크도 지난해 주가·금리·물가·지지율을 조합해 비슷한 개념의 압박지수를 만들었다. 두 지수 모두 지금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언제 돌발적인 발표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트럼프의 고통까지 시장이 지수화한 것은 트럼프의 입만 바라봐선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어서다. 좋은 지도자의 덕목인 신뢰자본을 트럼프가 잃었다는 얘기다. “믿을 만한 지도자는 선언만으로 상대의 기대와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위협만으로 상대가 움직이고, 약속만으로 시장이 반응한다. (하지만) 신뢰자본은 한번 소진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마약에 내성이 생기듯, 같은 효과를 내려면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해진다. 신뢰가 상실되면 정책 효과가 없다.” NH투자증권의 지난주 분석인데, 경제학의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정치인의 신뢰자본을 잘 설명했다. 보고서는 관세 협상과 이란전쟁에서 쏟아진 트럼프의 말 폭탄 위력이 점점 작아지는 것 자체가 신뢰자본의 소진을 보여준다고 썼다.
미국-이란 전쟁이 한 달을 넘어섰다. 상상만 해왔던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전 세계 경제에 실제 얼마나 무서운 충격을 주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은 ‘이란의 우위’였다. 더 잃을 게 없고 강경파가 득세한 이란의 물귀신 작전을 뼈아프게 지켜보며 미국은 승산 없는 확전과 굴욕적 협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당장 오늘 전쟁이 끝나도 유가가 정상화하려면 넉 달은 걸린다고 한다. 고유가와 고금리는 일차적으로 기업의 비용을 늘리고 이차적으로 가계의 소비 여력을 줄여 기업의 매출 부진으로 이어질 것이다. 추경은 불가피하지만 당장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차원을 넘어 이왕이면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 잘 쓰여야 한다. 몸살감기에 해열제 처방도 필요하지만 체력과 면역력을 높여주는 게 근본처방인 것과 마찬가지다. 시중금리 오름세는 트럼프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고통스럽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 상단이 7%를 돌파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이들부터 고단해질 것이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같은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가 고금리에 터지는 일이 없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하필이면 한국은행 총재 교체 시기와 겹쳐서 걱정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