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3년 10월16일. 아일랜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윌리엄 로원 해밀턴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현대 ‘선형대수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는 실수 a·b와 허수 i로 구성된 복소수 a+bi 보다 더 확장된 새로운 수 체계를 도입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듯 허수는 i²=-1로 정의 내릴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3차원 공간 표현에 필요한 새로운 허수들 i·j·k 간의 관계를 풀 수 없었으니 말이다.
생각에 지친 머리를 잠시 식히려 아내 헬렌과 산책하던 해밀턴은 더블린 시 다리를 건너가다 갑자기 i²=j²=k²=ijk=-1 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너무나도 뜻 밖의 통찰에 감동한 해밀턴은 다리 난간에 이 수식을 새겨두었다고 한다.
지식은 집중과 노력으로 습득
창의적 발상은 경험과 소통 필요
문제에서 떨어지는 ‘마음방랑’
AI 시대에 되묻는 창의성의 의미
‘사원수’(Quaternion)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수 체계는 3차원 방향과 회전 표현이 중요한 3D 컴퓨터 그래픽과 로봇제어에 필수적이고, 상대성 이론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거다. 몇 달 동안 책상에 앉아 연구하던 수학자 해밀턴이 찾아내지 못한 공식을 어떻게 산책하던 해밀턴이 찾아낸 걸까? 그리고 조금 더 확장된 질문도 해볼 수 있겠다.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창의성과 창조력은 인간 고유의 능력일까? 아니면 미래 인공지능 역시 언젠가 그 어느 인간도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을까?
인간은 언제나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며 인식하고 다음 행동을 선택한다. 덕분에 뇌는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보다는 생존에 필수인 미래 예측을 위한 기계로 진화해왔다. 대부분 미래는 과거의 확장이다. 과거 기억과 경험을 잘 저장하고 활용할수록 미래 예측 확률이 높아지겠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만약 미래가 단순히 과거의 확장이 아니라면? 과거의 생각과 행동만으로는 이 새로운 세상의 문제를 더 이상 풀 수 없다면?
단순히 과거 경험과 생각의 재조합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대부분 전문가들은 창의성을 확률게임과 비교한다. 한 사람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지기는 매우 어렵지만, 수십만 명 중 여러 명은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비교할 수 있으면 창의적 아이디어의 확률이 올라간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혁신이 대도시에서 벌어진 이유다. 여기에 수평적 소통, 그리고 구성원들의 다양성까지 더해지면 창의적 아이디어가 폭발할 수 있다. 다양한 인종·민족·문화권 출신의 인재들이 모여 수시로 소통하는 실리콘밸리가 여전히 기술적 초격차를 유지하는 이유다.
그런데 왜 창의적 아이디어는 하필 경험과 소통의 다양성을 필요로 할까? 현대 뇌과학에서는 새로운 생각의 기원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와 연관성이 있다고 가설한다. DMN은 특정 문제에 집중할 때보다 아무 생각 없이 휴식할 때 벌어지는 뇌의 단순한 ‘백그라운드’ 시스템 정도로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바로 뇌의 이런 백그라운드 활성이 창의적 발상에 필수적이라고 한다.
집중과 노력을 통해 지식과 능력은 습득할 수 있지만,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발상과 창의적 아이디어는 문제에서 잠깐이나마 멀어져야 가질 수 있다. DMN을 기반으로 주의를 이탈한, 내면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에서 떠돌아다니는 ‘마음 방랑’(mind wandering)이 창의적 생각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책상에 앉아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았던 문제를 산책하던 해밀턴이 풀 수 있었던 이유다.
중동에서 발명된 쐐기문자를 시작으로 지난 5000년동안 누적된 인류의 기억과 지식과 발상들. 생성형 AI는 이 거대한 호모 사피엔스의 기록을 압축하고 쥐어짜 새로운 ‘토큰’을 생성하고, 에이전틱 AI는 인류가 원하는 문제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여기에 DMN 스타일 ‘마음 방랑’ 능력까지 기계가 가지게 된다면? 인간이 풀지 못했던 수학적 명제를 증명하고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 이론까지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우주의 기원과 미래를 설명할 새로운 아인슈타인 같은 인공지능 역시 불가능하지 않다면, 그런 미래 세상에서 인간의 창의성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쉬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대에 새로운 발상을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수다 떨고 미술관을 가고 다리에서 산책을 해야 하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