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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째 평균의 함정…해결 아닌 관리에 갇힌 소상공인 정책 [더롱뷰]

중앙일보

2026.03.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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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집안엔 저마다 다른 사연이 있다더니, 자영업이 그렇다. 이유는 제각각인데, 결말은 대개 비슷하다. 경기가 안 좋아, 프랜차이즈 횡포가 심해, 배달앱 수수료가 비싸, 경쟁업소가 너무 많아, 인건비가 올라…. 중앙일보가 지난해 게재한 ‘창간기획, 자영업 리포트’엔 딱한 얘기들로 가득했다.

해가 바뀌었지만, 이 문제가 속 시원히 풀렸다는 소식은 없다. 정치인들이 때마다 전통시장을 찾아 어묵을 먹으며 지원을 약속했지만, 그때뿐이다. 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도 여러 번 열렸지만, 별반 달라진 건 없다.

행정이 자영업의 현실 문제에 대응할 때엔 소상공인이라는 법적 개념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두 집단이 반드시 동일하진 않다. 같은 부류와 업종 안에서도 저마다 처한 사정은 천차만별이다. 경계가 모호한 이 둘을 구분하지 않다 보니, 정책은 평균값에 머물고 현장은 계속 빗나간다.

문제의 출발점은 개념이다. 애초부터 소상공인이라는 범주 자체가 넓고 막연했다. 766만 소상공인들은 규모가 작다는 것 외엔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업종과 이해관계 등이 천차만별이다. 혁신 기술을 지닌 젊은이가 창업한 스타트업과 퇴직자가 신장개업한 치킨집은 완전히 다른데도, 다 함께 소상공인이다. 골목길에 이웃으로 있는 카페와 문구점의 사정은 마치 강과 바다처럼 이질적이지만, 같은 소상공인으로 취급된다.
김지윤 기자

너무 큰 노즐의 행정용어를 쓰다 보니 디테일은 무시된다. 맞춤형 지원을 한다곤 하나, 개별 사업장의 현실까지 내려오지 못하면 또 다른 평균에 그친다.

돌이켜 보면, 애초부터 그런 디테일을 따지지 않고, 아니 그럴 여유도 없이 나온 게 소상공인이란 말이었다. 이게 정부 차원에서 처음 거론된 건 1998년 7월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급하면서다. 중소기업보다 작은 규모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외환위기로 실직자들이 자영업에 대거 진입하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그 뒤 소상공인에게 중소기업과 분리된 법적 지위가 부여된 게 2000년이었다. 소기업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으로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이어 20년이 더 흐른 뒤 소상공인기본법과 시행령이 만들어졌다. 출발점부터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 성격이 강했다.

혁신과 성장을 위한 경제대책과는 성격이 달라서였을까. 소상공인 정책이 나오긴 했지만 국가적 우선순위에선 상위에 오르지 못했다. ‘상시 근로자 몇 명’식으로 소상공인을 규정하는 법적 개념의 틀이 26년째 그대로인 걸 보면 그렇다. 그보다 규모가 큰 중소기업과 소기업의 범주는 2014년, 2015년 각각 평균 매출액 기준으로 변경됐다.

소상공인의 상황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과는 현격히 달라졌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다. 매출액이 수십억원에 달해도 직원이 적으면 소상공인 혜택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사업이 커져도 직원을 늘리지 않으려는 ‘피터팬 증후군’이 나온다. 직원 수보다 중요한 디테일들은 간단히 무시된다. 매출이 얼마나 커지는지, 지속적인 성장은 가능한지, 생산성은 어느 수준인지, 사장님이 전문성을 지녔는지…. 이런 현실을 담아야 정책이 효과를 거둔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번 나왔는데도 딱히 바뀌지 않는다.
김영희 디자이너

이 사안이 마치 정책의 맹지(盲地)처럼 남은 데엔 과거 대기업 중심 산업정책의 유전적 영향도 적잖다. 정부는 1960~70년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수출 주도로 경제를 키우면서 중소기업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중소기업기본법을 제정한 게 1966년인데 그 시행령은 1983년에야 만들었으니, 한동안 거의 방치했던 셈이다. 또 1975년의 중소기업계열화촉진법은 대기업 계열이나 하청 중소기업에 지원을 집중하는 내용이었다. 정책적으로 대·중소기업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그때는 그게 효율적이었다. 한정된 자원이라는 제약 조건에서 합리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생산성 면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압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이치다. 고도성장의 부산물이자, 우리 경제의 그늘진 뒷모습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판이 이렇게 짜여진 이상, 정부에게 소상공인을 위해 뭘 더 잘해주라고 바라긴 어려워 보인다. 또 정부 지원이 모자라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가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정책의 실패보다 정책의 한계다.

그렇다면 무딘 정책을 펴느라 수조원의 재정과 인력을 쓰느니, 정부는 아예 손을 떼는 게 나을 수 있다. 정부가 계속 지원했는데도 문제가 그대로라면, 정부 개입을 멈추거나 리셋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업이라면 그렇게 한다. 예컨대 담당부처 구조조정을 하고, 그 예산을 추첨으로 소상공인에게 그냥 나눠주는 게 차라리 신선한 자극일지 모른다.

물론 표를 봐야 하는 정치인들이 그렇게 할 리는 없다. 오히려 새로운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계속 내놓는다. 경제대국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큰 정부를 좋아하는 진보 진영이 더 적극적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2024년 부통령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는 유세에서 “소상공인은 미국 경제의 핵심”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창업 지원을 확대해 첫 임기 4년 간 신규 창업 2500만 건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올 3월엔 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야심적인 소상공인 지원대책을 내놨다. 공공기금을 통한 소상공인 대출을 크게 늘리고, 금리도 9%에서 7.5%로 깎아준다는 게 핵심이다. 맘다니는 “소상공인은 뉴욕 경제의 근간이자 지역사회의 심장”이라는 수사도 잊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소상공인을 성장의 주역으로 보면서도 상반된 대책을 선호한다. 감세와 규제 축소로 기업환경을 개선해 성장의 길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진보는 더 창업하라 하고, 보수는 덜 간섭하겠다는 쪽이다.

미국 여론도 소상공인에게 우호적이다. 2024년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이 미국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응답이 10명 중 9명꼴로 나왔다. 대기업이나 은행을 긍정적으로 평한 이는 각각 29%, 37%에 불과했다. 소상공인을 약자로 보는 인간적 감수성은 어느 사회에서나 보편적이다. 정부 보조금에 눈살을 찌푸리는 보수 경제학자들도 소상공인 지원엔 너그럽다.

긍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실제 경제효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타난다. 전미경제연구국(NBER)에 따르면 중소기업청(SBA)의 대출이 지역의 소득 성장과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카운티에서 1인당 SBA 대출이 10% 늘어날 때 그 지역 소득 성장률은 약 2% 낮아진다는 것이다. 침체 지역에 대출이 지원된 영향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론 보다 효율적인 분야로 갈 돈이 생산성 낮은 곳으로 대체된 데 따른 효과다. 2014년 조사지만 지금도 ‘소상공인=성장 견인차’라는 등식을 깨트린 연구로 인용된다.
김영희 디자이너

또 실질 성장률과 자영업의 비율 역시 음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조사도 있다. 탄탄한 성장기엔 실질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굳이 자영업을 창업하기보다 취업해 월급 받는 게 개인에겐 합리적이다. 이는 1950년대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유럽 선진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누적 데이터를 통해 확인됐다. 경영학자 스콧 셰인이 그런 골자로 쓴 『창업신화의 허상』(2009)은 소상공인 신화에 찬물을 끼얹으며 회자됐다.

소상공인 이슈는 경제인 동시에 정치다. 이들을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양상이 달라진다. 지난해 스탠퍼드대 정치학 교수 닐 말호트라의 논문은 소상공인의 보수화 경향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직원을 고용해 사업하는 소상공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공화당을 지지할 확률이 18%포인트 높다고 한다. 소상공인들은 규제와 세금이라는 장벽에 부딪히면서 자연스럽게 작은 정부와 감세를 주장하는 보수주의자로 변한다는 것이다.

말호트라는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라는 경험 자체를 보수화의 기제로 봤지만, 사업의 성공을 전제로 한 얘기다. 생계형 창업의 과밀화 늪에 빠져 있는 우리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그의 분석처럼 소상공인이 특정한 이념성향을 지닐 수 있고, 경제적 약자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규모라는 점은 분명하다. 정치가 이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문제는 풀리지 않고 관리되는 것 아닐까.

경제논리로만 본다면, 이는 생산성과 효율을 비용으로 지불한다. 그래도 안 할 수는 없고, 어느 선에서인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 철인 정치가라 해도 찾기 어려운 답이다. 현실에선 옳은 정책보다 유리한 정책이 먼저다. 관료들은 그걸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런 관료적 효율은 경제의 효율과는 별개다. 그래서 10년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영업의 위기’를 걱정할 듯하다.
‘더 롱뷰(The Long View)’는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하는 독자를 위해 준비했습니다. 경제 이슈의 본질과 맥락을 파고듭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지내고, 현재 미주 중앙일보 대표를 맡고 있는 남윤호 대기자가 사안을 꿰뚫는 날카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남윤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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