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임회사의 인사 담당자가 전한 현실이다. 그는 “게임 업계는 연봉이 경력순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희망퇴직 역시 연차보다 역량과 고과 평가가 기준”이라며 “프로젝트를 책임질 소수의 시니어 개발자와 디자인 인력은 아직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하기 어렵지만 주니어 개발자 수요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김 대리’가 사라지고 있다. 입사 5~10년차인 20대와 30대가 주로 맡는 실무자 자리다. 기업에서 자료 조사, 실무 조율, 문서 작성, 기초 코딩 같이 비교적 쉽고 표준화된 업무를 담당한다. 이 일이 AI로 가장 먼저 대체되고 있다. 신규 채용이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 재편과 효율화와 맞물려 젊은층까지 희망퇴직 압박에 놓였다.
30일 중앙일보가 국가통계포털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30대 실직자(1년 내 퇴사) 중 비자발적 실직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38.2%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위기 직후인 2021년 이후 최고치다. 10년 전인 2015년 26.9%보다 11.3%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40·50대는 57.5%에서 62.1%로 4.6%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비자발적 실직은 ▶직장의 휴업·폐업 ▶명예퇴직·조기퇴직·정리해고 ▶임시·계절상 일자리 종료 등의 사유로 퇴사한 경우를 아우른다. 불안정한 일자리, 이른 희망퇴직 등으로 2030세대의 고용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인력 구조조정을 경험하는 절대적·상대적 규모도 다른 연령대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1년 내 퇴사자) 가운데 명예퇴직·조기퇴직·정리해고를 겪은 30대는 지난해 1만9412명이었다. 10년 전 1만3846명에서 40.2%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20대 역시 1만5351명에서 1만9411명으로 26.4% 증가했다.
이에 비해 40대(13.1%), 50대(16.8%)는 그 증가 폭이 절반 수준이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0·30세대는 인구 자체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인데 비자발적으로 실직하는 절대적 숫자는 늘었다”며 “이들이 체감하는 고용 불안은 통계 이상으로 더 클 수 있다”고 해석했다.
지금까지 희망퇴직은 사실상 40·50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 연령 희망퇴직’이 확산하면서 대상이 30대까지 낮아지고 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말 ‘자발적 퇴사 선택 프로그램(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근속 연수, 직군, 연령 제한을 두지 않았다. 2023년부터 3년 연속 희망퇴직을 시행한 11번가도 만 35세 이상, 근속 5년 이상 직원을 신청 대상으로 뒀다. LG생활건강·롯데온·SSG닷컴 등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성호 피플그로스컨설팅 대표는 “과거 희망퇴직이 조직을 젊게 만드는 ‘세대 교체’에 가까웠다면 최근엔 ‘역량 교체’ 성격이 짙어졌다”며 “대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나이와 무관하게 정리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른바 ‘김 대리 실종’ 현상은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AI 확산에 대응해 기업이 신규 채용의 문을 좁히고 있어서다. 이미 청년이 선호하는 대기업에선 ‘김 대리’보다 ‘김 부장’이 더 많은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분석연구소인 리더스인덱스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대상인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 124곳을 조사했더니 총 임직원 중 30세 미만 인력 비중은 2022년 21.9%에서 2024년 19.8%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50세 이상은 19.1%에서 20.1%로 증가해 2015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30세 미만을 앞섰다.
기업별로 따지면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진다. 삼성전자의 20대 비중은 2022년 30.8%에서 2024년 24.2%로 감소했다.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29.6→14.6%로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네이버 역시 같은 기간 25.4%에서 18.3%로 7.1%포인트 줄었다. 오 대표는 “AI 시대의 고용시장은 양극화가 더욱 심해져 준비된 사람은 큰 보상을 받겠지만 그렇지 못한 취업자는 점점 밀려나는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최근 통계에선 노동시장 밖으로 이탈하는 청년층이 증가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지난해 30대 ‘쉬었음’ 인구는 30만9000명으로 역대 최대치 기록했다. ‘쉬었음’은 학업·육아·질병 등 특별한 이유 없이 일도 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를 뜻한다. 이 가운데 일한 경험이 있는 인원은 29만명으로 전체의 90%다. 상당수는 노동시장에 한 차례 진입했다가 밀려난 뒤 구직 자체를 멈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적지 않은 인원이 고숙련 일자리로 이동하지 못한 채 질 낮은 일자리를 경험하거나 해고 등을 겪게 됐고 이에 따라 노동시장에 대한 참여 의지 자체가 꺾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AI 시대의 구조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보다 이른 단계부터 역량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직 이후 이뤄지는 재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 교수는 “산업 변화와 경기 등 불확실성이 크고, 노동시장이 경직될수록 기업이 채용에 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해고 등 출구 전략이 마땅치 않다 보니 신규 채용부터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되고 고스란히 청년층의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용 시장의 유연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중견기업이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기업 성장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