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소득 하위 7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1인당 10만~60만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지급한다. 중동전쟁에 따른 고유가∙고물가로 서민층이 겪는 이중 부담을 고려한 조치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지역화폐 등의 형태로 지급한다.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재원을 추경으로 마련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K패스 환급률도 한시적으로 높인다.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6년 추가경정예산안’을 3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번 추경은 총 26조2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세부적으로 고유가 부담 완화(10조1000억원), 민생안정(2조8000억원), 산업 피해 최소화와 공급망 안정(2조6000억원), 지방재정 보강(9조7000억원), 국채 상환(1조원) 등으로 나뉜다. 중동전쟁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고, 수급 불안까지 가중되는 가운데 파장이 각 경제 주체로 전이되기 전 급한 불을 끄고 가겠다는 의도다.
핵심은 유가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층 지원과 석유 가격 안정 대책이다. 눈에 띄는 건 고유가 피해지원금이다. 총 4조8000억원을 투입해 소득 하위 70%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지역과 소득 수준별(건강보험료 기준)로 가구원 1인당 10만~60만원씩 차등 지원한다. 수도권 기준 소득 하위 70% 가구는 1인당 10만원을 받는다. 차상위·한부모 가구는 35만원을 추가한 45만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45만원을 추가한 55만원을 각각 받을 수 있다.
비수도권은 소득 하위 70% 가구에 1인당 15만원씩 지급하되 인구감소지역의 경우 1인당 20만(우대지원)~25만원(특별지원)을 준다. 비수도권 차상위·한부모 가구는 1인당 50만원, 비수도권 기초수급자는 1인당 60만원을 받는다.
지원금은 코로나19 재난재원금,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때와 같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선불카드, 신용ㆍ체크카드 중 선택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사용처는 지역화폐 가맹점으로 한정했다. 정부는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실무 작업을 시작할 방침이다. 기초∙차상위·한부모 가구는 1차로 우선 지급하고, 일반 가구는 건강보험료 등을 통해 대상을 확정한 후 지급한다. 취약계층의 경우 이르면 4월 말 지급을 시작할 전망이다.
등유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사용하는 저소득층 20만 가구엔 5만원을 추가로 지원한다. 또한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는 시설농가와 어업인에게 한시적으로 유가 연동 보조금을 지급한다. 연안 화물선 부담 경감을 위해 선박용 경유를 최고가격제에 포함하는 한편 기준 가격을 초과한 인상분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추경안엔 유류비∙교통비 경감을 위한 예산 5조1000억원도 반영됐다. 이 중 4조2000억원은 석유 최고가격제 손실 보전 목적의 예비비다. 최고가격제는 공급 가격에 상한을 설정하는 대신 정부가 정유사의 손실을 메워주는 구조다. 일단 이번 추경에서 6개월치 손실을 반영했다. 조용범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은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경우) 내년 예산안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나프타 수급 대응, 유류비∙외화예산 부족분 대응 예산 등이 추가됐다. K패스 대중교통비 환급률도 6개월 동안 기존 20%에서 30%로 높여 적용할 예정이다.
2조8000억원 규모의 민생 안정 자금도 투입한다. 소상공인 대상 긴급경영안정자금과 석유화학 업계 등 취약노동자를 중심으로 고용유지지원금을 확대한다. 9000억원 규모의 청년 일자리 지원 예산도 반영했다. 직업 훈련을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 대상을 5만 명에서 6만 명으로 늘리고, 체납관리단∙농지특별조사원 등 2만3000개의 공익형 일자리도 공급한다.
정부는 이번 추경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2%포인트가량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추경 재원은 국채 추가 발행 없이 초과 세수로 충당한다. 세부적으로 법인세(14조8000억원), 증권거래세∙농어촌특별세(10조3000억원), 근로소득세(4조8000억원) 등이다. 김병철 재정경제부 조세총괄정책관은 “반도체 경기 개선에 따른 기업 실적 증가를 반영했고, 증시 활성화에 따른 주식 거래 대금 등 세수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추경으로 2026년 총지출은 727조9000억원에서 753조1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총지출 증가율도 8.1%에서 11.8%로 확대된다. 정부는 위기 상황에 초과 세수를 바탕으로 대응하는 것인 만큼 무리한 재정 확대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규모 재정 지출에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07조8000억원에서 107조6000억원으로 다소 개선됐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51.6%에서 50.6%로 낮아진다.
다만 재정 지표가 개선된 건 성장률 전망이 개선된 영향이다. 정부는 본예산 때 명목 성장률(실질 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9%로 잡았으나, 올해 수정 전망에서 4.9%로 높였다. 중동전쟁 등 확산하는 위험 요인이 재정 지표에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부 관계자는 “공식 전망이 변경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수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7일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0.4%포인트 하향한 1.7%로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