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미용기기를 제조하는 A중소기업 대표 김모(53)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중동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향하던 수출 물량이 한 달 가까이 인도 항구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납기일이 이미 한참 늦어져 결국 한국으로 반송할 수밖에 없다”며 “추가 운송비 부담은 물론, 맞춤 제작한 6000만원어치 수출품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성사된 두바이 계약으로 2년간 5억원 규모의 수출을 기대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다”며 “수출의 절반 가량이 중동에 집중돼 있어 전쟁이 장기화하면 기업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심란해했다.
중동전쟁이 한 달을 넘기면서 산업계 전반에 ‘공포의 4월’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간 누적된 전쟁 여파가 4월을 기점으로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시계제로’ 상태에 빠질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특히 외부 충격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최신 집계에 따르면 중동전쟁 관련 중소기업 피해·애로는 422건 접수됐다. 유형별로는 운송 차질(170건·59.9%)이 가장 많았고, 계약취소·보류(101건·35.6%), 물류비 상승(96건·33.8%)이 뒤를 이었다.
중소기업의 경기 전망은 더 어두워졌다. 중소기업중앙회의 ‘4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조사’에 따르면 4월 업황전망 경기전망지수(SBHI)는 80.8로 전월보다 1.7포인트 하락했다. 해당 지수는 100 미만일 경우 향후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의미다.
플라스틱·비닐의 원재료인 나프타 수급 불안에 따른 ‘나프타 쇼크’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자동차·가구·뷰티·패션 등 대부분의 업종이 영향권이다. 인테리어 업계는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자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재 가격이 뛰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졌다. 정오균 주택가구협동조합 이사는 “표면재와 보드 등 수입 원자재 선적이 어려운 상황이고, 일부 품목은 벌써 가격이 20~30% 올랐다”고 말했다.
특히 식품업계는 비상이다. 라면·과자 포장재 재고가 한두 달치에 불과한 데다, 대체 소재 확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주력 제품 외에는 생산을 중단하는 비상경영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4월 이후 식품 업계 전반에 생산 차질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배달 식·음료의 포장 용기 가격이 40% 이상 오르면서 소상공인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유류비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물류·배송 차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배달업계 관계자는 “유류비 상승으로 실질적인 수익 감소에 부담을 느낀 배달기사들의 이탈이 이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공급망 전반에 비상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결국 식탁 물가와 생활비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워플레이션(Warflation·전쟁+인플레이션)’으로 번지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가 압박이 상당해 결국 가격 인상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주요 페인트 기업은 중동전쟁의 여파라며 최근 제품별 가격을 20~55% 올렸다. 직장인 박수빈(31)씨는 “인테리어 견적 가격이 한 달 사이에 1000만원이 넘게 올랐다”고 했다. 일부 식당·카페 점주들도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단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