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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아틀리에’에서 33년간 물방울 그렸다…김창열 화백 평창동 자택 공공미술공간으로

중앙일보

2026.03.3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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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서울 평창동 김창열 화백의 자택. 사진 종로구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자락 깊숙한 기슭에 자리잡은 한 주택이 공공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연다. ‘물방울 화가’로 세계 화단에 이름을 남긴 고(故) 김창열 화백이 1988년부터 2021년 타계 직전까지 거주하며 작업하던 집이자 작업실이다. 종로구는 이 옛 자택을 매입해 ‘김창열 화가의 집’으로 조성하고 31일 준공식을 했다고 밝혔다. 연면적 512㎡ 규모로, 전시 준비를 거쳐 오는 5월 말부터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 화백은 1988년 평창동에 이 집을 짓고 33년간 머물렀다. 손주들이 태어나면서 3대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집은 그의 예술 세계를 닮았다. 지하 2층, 지상 2층 구조로, 작업실은 집의 가장 깊숙한 곳인 지하 2층에 자리하고 있다.

지하 2층 작업실.
작업실에서 화가가 주로 앉아 있던 벽난로 옆 의자. 한은화 기자
천장고가 3m를 넘는 작업실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다. 작업실 옆 서재에 난 작은 천창 하나가 유일한 채광 통로다. 김창열 화백이 천자문과 도덕경을 읽고 쓰던 책상 위로 자연광이 스며든다. 천창은 고향집 우물을 형상화한 둥근 형태다. 책상에는 생전 사용하던 다기와 화구와 손때 묻은 도덕경이 그대로 놓여 있다.

이번 리모델링은 작가의 사적 공간을 최대한 보존·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사 전 공간 전체를 3D로 기록해 그대로 재배치했다.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을 설계했던 플랫폼아키텍처가 프로젝트를 맡았다.

최수연 플랫폼아키텍처 공동대표는 “제주 미술관 건립 당시 처음 자택을 찾았을 때, 현관에서 작업실까지 깊숙이 내려가야 하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며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마치 구도자처럼 온종일 작업에 몰두하던 모습이 화백의 성품과 공간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했다”고 말했다.
서재 전경. 사진 종로구
 서재 책상을 비추는 천창, 한은화 기자
실제로 김 화백은 생전 “나는 작업을 위해 빛을 아틀리에 안에 들이지 않는 편이다”며 “동굴 같은 곳에서 내면의 빛에 의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동굴’ 같은 공간에서 영롱한 물방울과 함께 동양 철학과 정신을 담은 천자문을 그렸다. 서재 옆 방의 작은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형제봉이 보이는 1층 창가 식탁에서 식사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에 쏟았다. 최 대표는 “화가의 집에서 김창열 화백의 자취를 쫓아 정적이면서 예술적인 영감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유가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 390점을 포함해 총 2609점의 소장자료를 확보해 전시할 계획이다. 5월 개관에 맞춰 ‘종로아트버스’ 노선도 신설된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번 출구를 출발해 박노수미술관, 윤동주문학관, 석파정 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가나아트센터를 거쳐 ‘김창열 화가의 집’까지 연결된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국내외 미술 애호가들이 찾는 상징적 장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은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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