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 24일에 이어 31일도 재판소원 청구건을 전부 각하했다. 헌재는 전날까지 접수받은 재판소원 사건 256건 중 48건을 추가로 각하했다.
전부 헌법재판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가 사전심사로 각하한 것이다. 전원재판부로 회부된 청구 건은 이제껏 한 건도 없다. 지난 24일에도 재판소원 26건이 전부 각하됐다. 총 74건이 본안 심사도 못 받고 사전심사 문턱에 막혔다. 재판관 9명 심리를 받는 것 자체가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각하 사유로는 ‘청구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헌재법 72조 3항 4호)’가 가장 많다. 지난번 17건에 이어 이번엔 34건이다. 이번에도 청구인이 “기본권 침해의 내용을 진지하고 충실하게 소명해야 하는데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주장하거나, 형식적으론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지만 실질적으론 법원의 사실 인정 또는 증거 평가, 법률 적용의 당부를 다투는 것에 불과하다”는 같은 문구로 각하했다.
이번엔 개별 사안들에 대한 세부적 각하 사유도 일부 추가 공개했다. 증거능력 없는 자백을 법원이 유죄 증거로 삼아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청구엔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복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심리불속행을 문제 삼은 청구엔 “심리를 속행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청구인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명백한 사정이 소명됐다고 보긴 어렵다”며 각하했다. 단순 심리불속행만으론 재판소원 청구가 불가능하고, 침해당한 기본권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밖에 ▶소송 상대가 사실과 다른 상고이유서를 제출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거나 ▶하급심에서 쟁점을 충분히 심리하지 않았다거나 ▶법관이 자의적인 증거판단을 했다거나 ▶특허권 양도의 대가로 받은 금원에 조세 회피 목적이 있었다고 사실 오인했다거나 ▶부당한 선입견으로 자신의 주장을 실질적으로 심리하지 않았다는 청구 건들이 전부 각하됐다.
한 헌법 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헌재가 ‘대법원 위 4심제상 최고 법원’이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자칫 사실관계나 법리를 다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일 여지를 남기지 않고 철저히 기본권 침해 여부만 다루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이날까지 재판소원은 취소, 각하된 사건을 포함해 269건 접수됐다. 지난 12일부터 접수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 354건의 76%에 해당한다. 이 중 190건은 대리인(변호사) 선임 없이 청구됐다. 헌재법상 헌법재판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는 제기할 수 없기 때문에 각하되거나 헌재가 국선 대리인을 지정할 전망이다. 27건(10%)은 대법원이 아닌 서울중앙지법, 인천지법 등 하급심 상대로 청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