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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지 않고 누른다…변신인가, 배신인가

중앙일보

2026.03.3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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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세 번째 F1 대회인 일본 그랑프리에서 머신들이 피트 레인 앞을 달리고 있다. 가운데 사진은 일본 그랑프리 우승 후 트로피에 키스하는 키미 안토넬리. 아래는 8위에 그친 막스 페르스타펜. 그는 엔진과 전기모터 반반으로 달리는 F1에 불만을 표시했다. [AP=연합뉴스]
“우리 팀 요리사에게 운전대를 맡겨도 될 것 같다.”

F1 베테랑 페르난도 알론소(애스턴 마틴)가 올 시즌 경기 방식에 쏟아붓은 직격탄이다. 운전 기술보다 배터리 관리가 더 중요해진 현실을 조롱한 발언이었다. 올 시즌 F1이 하이브리드 머신으로 전환하면서 드라이버 반발이 거세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새 시즌 머신 파워유닛을 전면 개편했다. 내연기관과 전기모터 비중을 각각 절반씩으로 조정했다. 지난해까지 내연기관 비중이 80%였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개조한 셈이다.

지난해는 직선 주로 가속으로 얻은 열에너지로 전기모터를 충전했다. 올해는 시중 전기자동차처럼 속도가 줄어들 때 발생하는 기계 에너지를 활용한다.

새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드라이버들은 코너 구간을 가속 없이 관성으로 통과해 배터리를 충전한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야 우승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난처해진다. 막스 페르스타펜(레드불)을 비롯해 여러 드라이버가 직선 주로를 달리다 최고 스피드 도달 전 급격히 속도가 떨어지는 ‘수퍼 클리핑(Super Clipping)’ 현상으로 애를 먹었다. 배터리 방전 직전에 시스템이 엔진 출력을 강제로 가로채 긴급 충전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4차례 F1 챔피언에 오른 페르스타펜이 가장 화가 났다.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GP에서 8위에 그친 뒤 은퇴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7위나 8위로 달리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그 과정을 즐길 수 없다면 대회에 나서는 게 무슨 가치인지 의문”이라면서 “차라리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편이 낫다”고 했다. 페르스타펜은 “(전기모터용 부스트 버튼을 눌러 가속하는) 현재 F1은 레이싱 게임 마리오카트를 연상시킨다”고 꼬집었다.

랜도 노리스(맥라렌)는 “직선 구간에서 시속이 갑자기 30~40㎞ 가량 뚝 떨어지면 매우 위험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샤를 르클레르(페라리)는 “새 시스템은 장난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발의 핵심은 ‘레이싱의 본질 훼손’이다. 드라이버들은 운전 기술보다 배터리 운용 전략 등 부가적 영역에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편 “새로운 경쟁의 서막”이라는 의견도 있다. 조지 러셀(메르세데스)은 “지난해에 비해 머신의 반응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루이스 해밀턴(페라리)도 “추월과 재추월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올 시즌 흐름이 팬들에겐 달콤할 것”이라고 긍정적 관점을 드러냈다.

실제로 올 시즌 역전극이 잦아졌다. 배터리 관리라는 새 변수가 추가되면서 예측 불가능한 경기 양상이 펼쳐졌다. 19세 키미 안토넬리(메르세데스)가 2차례 우승을 차지하는 등 세대교체와 다양성이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메르세데스의 약진이다. 새 파워유닛 규정 개발을 주도한 메르세데스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최적화된 머신을 선보이며 팀 드라이버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러셀과 안토넬리가 초반 시즌 두각을 드러낸 배경이다.

논란이 커지자 FIA도 대응에 나섰다. 중동 전쟁으로 일부 대회가 취소돼 발생한 5주간의 휴식기 동안 규정 점검 회의를 열기로 했다. 로이터 통신은 “FIA가 머신의 에너지 관리 방식 조정 필요성을 검토한다”고 보도했다.

하이브리드 전환이라는 F1의 대전환은 드라이버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속도의 예술’을 추구해온 레이싱 스포츠가 ‘에너지 관리의 과학’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정체성 혼란이 빚어진 셈이다.

장기적으로 F1은 하이브리드를 유지하면서 전기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전망된다. 완전 전기차 레이싱인 포뮬러 E가 이미 존재하지만 F1의 압도적인 글로벌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2024년 F1 총 관중은 약 650만명, TV 시청자는 15.5억명을 기록했다. 중국 전기차 기업 BYD조차 포뮬러 E가 아닌 F1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그렇더라도 F1이 완전 전기차로 전환할 가능성은 낮다. 내연기관을 버리는 순간 F1의 정체성인 ‘엔진 사운드’, 그리고 상업적 가치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FIA는 2030년까지 하이브리드 파워유닛 공급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환경 규제와 레이싱의 본질 사이에서 줄타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송지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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