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2025~26시즌 V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PO) 2차전이 열린 지난달 29일 서울 장충체육관. 이틀 전 열린 1차전에서 세트스코어 0-2로 뒤지다 드라마 같은 3-2 역전승을 거둔 현대캐피탈이 두 세트를 먼저 내준 뒤 3세트를 가져왔다. 어떻게든 승리해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상대팀 우리카드의 반격에 다시 4세트는 열세. 20-23까지 쫓겼다. 관중석 한켠의 우리카드 팬이 ‘다시 천안(3차전 장소)까지’라는 글귀와 함께 펼쳐 든 스케치북 속 점수가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2점까지 내려왔다.
이어진 현대캐피탈 허수봉의 서브. 빨랫줄처럼 날아든 공에 리시브가 흔들린 우리카드가 아라우조의 오픈 공격으로 대응했지만, 현대캐피탈의 블로킹에 가로 막혔다. 허수봉의 서브가 이어지는 동안 현대캐피탈이 내리 3점을 더 따내 24-23으로 스코어를 뒤집었다. 그 중 2점이 서브 에이스였다. 이후 피말리는 듀스 접전을 이어간 현대캐피탈이 41-39로 세트를 따내며 57분간의 대혈투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상승세를 탄 현대캐피탈은 이어진 5세트마저 거머쥐며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이날 27득점을 몰아친 허수봉이 주포 레오(39점)와 함께 66점을 합작해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플레이오프의 지배자’로 부를 만한 활약이었다.
경기 후 필립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은 “보신 대로 허수봉이 극적인 순간을 만들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숨은 활약도 빛났다. 현대캐피탈은 PO 1·2차전에 리시브가 불안한 레오를 겨냥해 목적타 서브를 집중한 상대 전략에 어려움을 겪었다. 허수봉은 리베로와 함께 레오를 에워싸고 리시브를 대신하며 이를 해결했다. 주장으로서 팀 분위기를 이끈 것도 허수봉의 몫이었다. 블랑 감독마저 포기하는 듯 보였던 2차전 4세트 막판, 투지를 불태우며 가라앉은 팀 분위기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허수봉은 오는 2일 시작하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또 한 번 코트를 지배한다는 각오다. 상대팀 대한항공과는 여러모로 얽혀 각별하다.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대한항공에 뽑혔지만, 곧장 현대캐피탈에 트레이드됐다. 대한항공이 같은 포지션(아웃사이드 히터)에 정지석·김학민 등 국가대표급 선배를 보유한 탓이었다. 허수봉이 합류한 이후 현대캐피탈은 지난 시즌까지 챔프전에 5차례 진출했다. 상대는 한 번의 예외 없이 모두 대한항공이었다. 그 중 두 번 정상을 밟았고, 세 번은 준우승했다. 두 팀은 나란히 V리그 통산 5회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어느 쪽이든 이번에 이기는 팀이 한발 앞선다.
고교 졸업 후 프로에 직행한 허수봉은 지난 2022~23시즌 직후 자유계약선수(FA)가 자격을 얻어 현대캐피탈과 연봉 8억원에 재계약했다. 이번 시즌을 마친 뒤엔 두 번째 FA 자격을 얻는다. 현대캐피탈을 포함해 거의 모든 팀이 ‘할 수만 있다면’ 허수봉을 붙잡고 싶어한다. 허수봉은 “다른 팀 주축 선수나 친한 선수들로부터 ‘우리 팀에 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챔프전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챔프전 전망과 관련해서는 “경기 감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며 (챔프전에 직행해) 휴식기가 길었던 상대팀 대한항공에 대한 자신감을 에둘러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