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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썼다 한자썼다 ‘1+1’…수난의 광화문 현판

중앙일보

2026.03.31 08:18 2026.03.31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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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 기존 현판 외에 한글 현판을 추가로 설치하자는 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두 현판이 나란히 걸린 경우를 상상한 이미지. [사진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현판 국민모임]
2023년 대대적인 복원 제막식을 했던 서울 광화문(光化門) 현판이 ‘한글 현판’을 둘러싸고 다시금 논란에 휩싸였다. 조선 고종의 경복궁 중건 당시를 원형으로 삼은 현판을 ‘시대정신’에 맞춰 조정하자는 안이 올 초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제기되면서다. 문화유산의 원형 보존을 주장하는 원칙론과 20세기 이후 공간 변화의 상징성을 내세우는 주장이 현판 글씨를 두고 부딪치는 모양새다.

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열린 ‘한글 현판 추가 설치 의견 수렴을 위한 광화문 현판 토론회’는 이 같은 대립이 평행선을 달린 자리였다. 이날 발제에서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시류에 따라 문화유산을 변형하는 것은 과거를 조작하는 것”이라고 한글 현판 추가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면에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국가 상징 공간에서 문자와 문화 차원의 정체성을 한글 현판으로 나타내자”고 주장했다.

광화문 한글 현판은 한글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안됐지만 주무 기관인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과 문화유산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번번이 좌초했다. 최근 기류가 바뀐 것은 기존 현판을 두고 훈민정음체 현판을 추가로 달자는 절충안이 나오면서다. 김주원 한글학회장은 이날 토론에서 “훈민정음이 창제·반포된 곳이 경복궁인데, 두 현판을 나란히 두면 원래 한자 쓰던 사람들이 이젠 한글을 쓰고 한류를 일으켰다는 뜻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올해가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자 한글날의 효시인 ‘가갸날’ 선포 100주년이란 점도 강조했다. 앞서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1월 업무보고에서 한글 현판 추가 설치에 대해 “원형을 지키면서도 한글 현판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요구를 충족하는 안”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은 “최근 BTS(방탄소년단) 공연이 보여줬듯 광화문은 세계인에게 K컬처의 성지로 여겨진다”면서 “한글 현판 추가 설치는 문화관광의 서사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최근 중국 자금성 등 해외 사례를 들면서 ‘한글 현판 병기’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광화문 현판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그간 복원 과정에서 ‘원형의 실체’가 오락가락하면서다. 18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로 쓴 광화문 현판은 6·25전쟁 때 폭격으로 목조 문루가 불타면서 함께 없어졌다. 1968년 복원 때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장려하던 ‘한글 전용화 정책’에 맞춰 직접 한글 현판을 썼다. 이후 경복궁 복원 기준이 ‘고종 중건 당시’로 정해지면서 2010년 임태영 글씨로 복원한 한자 현판이 새로 걸렸다. 그러나 졸속 제작으로 목재가 갈라지는 사고가 난 데다 2018년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면서 이후 ‘검은 바탕 금색 글씨’로 다시 제작됐다.

이날 토론회에선 ‘다중(복수) 현판’이 억지스럽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강민(건축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목조 건물 현판 자체가 한·중·일 등 한자 문명권의 산물인데, 한글 현판으로 동어반복하는 건 의미 없다”고 주장했다. 자금성 현판의 경우 청나라 집권 세력이 기존 한자어에 만주어를 병기한 것이라 맥락이 다르다고 하면서다.

한편 2024년 유인촌 당시 문체부 장관이 ‘한글 현판’에 동조할 당시 공개적으로 반박했던 국가유산청 측은 이번에는 별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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