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들썩였다. 코스피가 5000선을 돌파하며 오랜 박스권을 벗어났고, 투자자들의 자산 증식 기대감이 부풀었다. 주가 상승은 또한 기업의 자금 조달을 돕는다.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코스피 5000은 단순한 축하의 대상만은 아니다.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한국 증시는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출범으로 시작됐다. 당시 상장사는 12개, 시가총액은 150억원에 불과했다. 오늘날 상장기업 수는 2700여 개 이상, 시가총액도 4800조원 이상 규모로 확대됐다. 단순한 비교는 어렵지만 지난 70년 동안 시가총액은 명목GDP(3억 달러→1.8조 달러)보다 훨씬 빨리 증가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가가 저평가되었다며 증시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금융이 실물보다 비대해지면
자금은 생산 아닌 투기로 이동
자본시장은 투기의 장 아닌
혁신과 생산 잇는 플랫폼 돼야
그렇다면 왜 지금 코스피 5000인가. 대통령의 남다른 관심과 함께 연금기금 등 공공기금의 매수 확대가 시장을 떠받쳐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최근 증시 상승에는 무엇보다도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이 깔려 있다. 첫째는 AI 투자 확대다.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AI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고성능 반도체와 메모리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했고, 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주목받으며 증시 호황을 선도했다. 둘째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기대다.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제도 개혁이 이어지면서 오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가능성이 높아지고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한국 기업은 오랫동안 낮은 배당과 내부유보 중심 경영, 지배주주 위주의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를 면치 못했다.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는 원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보완장치이지만, 현실에서는 지배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2025년 7월과 8월 1·2차 상법 개정이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도록 확대됐고,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도입이 의무화됐으며,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2인 이상으로 확대됐다.
올해 2월 3차 상법 개정에서는 기업이 취득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자사주가 지배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되는 관행을 줄이고, 주주가치와 자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일련의 개혁은 자본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제도적 전환이다.
물론 경계해야 할 점도 만만치 않다. 반도체 산업 특유의 경기변동성을 감안하면 증시 전체가 아직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이란 공격 등 대내외 충격으로 시장이 흔들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증시가 달아오르는 동안에도 실물경제는 저성장과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2023년 이래 매년 2%를 밑도는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기업경기실사지수(BSI) 격차는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금융이 실물경제보다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경제는 ‘금융화’되고, 산업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로 변한다. 최근 증시에서 신용거래와 레버리지 투자가 늘면서 자산가격 상승이 다시 투기를 부르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제임스 토빈(James Tobin)이 지적했듯 금융시장은 ‘카지노적 성격’을 띨 수 있으며, 조순 선생 역시 이러한 금융화가 결국 ‘돈 놓고 돈 먹기’식의 카지노 경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폐단은 개인 차원의 왜곡으로 시작되어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번진다. 금융 수익률이 산업 투자보다 더 높으면 자금은 생산이 아니라 투기로 이동한다. 도박에 빠진 농부가 농사를 등한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단기 수익 추구가 확산되면 근검절약과 장기 축적의 가치관이 약해지고, 유능한 인재들도 산업보다 금융으로 쏠린다. 이렇게 형성된 투기적 자금 흐름은 자산 가격을 실물과 괴리시키고, 거품 붕괴는 금융을 넘어 경제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자산 가격 상승의 과실은 특정 계층에 집중되고, 경제는 점점 ‘1% 경제’로 기운다. 이것이 금권경제(plutocracy)다.
코스피 5000 시대의 정책과제는 분명하다. 자본시장을 투기의 장이 아니라 혁신과 생산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장기 투자 중심의 시장구조를 만들고, 중소·벤처기업이 자본시장을 통해 성장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자본시장이 지렛대 역할을 해야 한다.
증권시장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주가는 경제의 체온계다. 체온이 오른다고 환자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코스피 5000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온기가 혁신과 생산의 현장, 그리고 골목 깊숙이까지 닿아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한국경제는 새로운 도약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