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두 번째 추경으로, 중동전쟁의 충격 완화를 위한 것이다. 총 4조8000억원을 투입해 소득 하위 70% 가구(3256만 명)에 지역화폐 등으로 1인당 10만~60만원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지급하고, 석유 최고가격제 손실 보전(4조2000억원)을 포함한 유류비·교통비 경감에 5조1000억원을 배정했다. 민생 안정(2조8000억원), 산업 피해 최소화와 공급망 안정(2조6000억원)을 위한 예산도 반영했다. 여야는 오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중동전쟁이 촉발한 3고(고유가·고환율·고물가)로 인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는 민생을 감안하면 여당의 ‘전쟁 추경’ 속도전도 일리는 있다. 추경은 적기·적소에 이뤄져야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속도에만 방점을 찍은 졸속 추진은 곤란하다. 우선 26조원은 당초 거론됐던 추경 규모보다 5조~10조원이나 많다. 현금성 지급 대상도 넓어졌다. 고유가 피해지원금 대상인 하위 70%는 국민 10명 중 7명으로 사실상 ‘보편적 현금 살포’ 수준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위기 상황을 틈타 슬쩍 밀어넣은 선심성 사업 등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매표용 추경’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대규모 추경의 부작용도 따져야 한다. 정부는 국채 발행 없이 초과 세수를 활용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번 추경으로 올해 본예산은 지난해보다 11.8%나 늘어나게 된다. 초과 세수를 쟁여두거나 적자 국채 상환에 쓰는 대신 돈 풀기에 동원하면서 정부의 대응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금성 지원으로 물가 압력이 커지며 금리 상승을 자극할 여지도 다분하다. 이미 국채 금리가 오르며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7%를 돌파했다. 이런 기조가 이어지면 서민 가계와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전쟁 추경’에 대해 “회사는 어려워지는데 사장이 회식비만 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말처럼, 물가오름세를 잡지 못하고 거시경제를 안정시키지 못하면 추경을 통한 민생 지원 효과는 퇴색한다. 전례 없는 위기 대응을 위한 추경인 만큼 여야는 추경을 정쟁이나 선심의 도구로 삼기보다 꼼꼼한 심사를 통해 최대한의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추경안을 의결한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긴급재정명령 발동까지 시사하며 강력한 위기 대응 의지를 밝혔지만, 오히려 시장의 불안심리를 자극해 추경의 효과를 갉아먹을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한 발언과 사려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