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절망의 길목에서 피는 꽃

Chicago

2026.03.31 13:2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이기희

이기희

시작은 뜨겁다. 희망으로 불타오른다. 결의와 갈망으로 벅차오른다. 실패를 염두에 둔 시작은 없다. 낭패로 굴러 떨어질 때까지 끈을 잡고 놓치 않는다.  
 
해가 바뀔 때마다 소망을 담은 그림을 채색하며 구겨진 인생의 팔렛트에 희망의 점들을 수없이 새겨넣었다. 달력의 장을 넘길 때마다 강렬했던 목표는 서리 맞은 잎새처럼 오그라들었다. 앞으로 더 나아갈 내일은 남아 있을까?  
 
두려운 것은 시작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잃는 것이다. 절망은 오래된 간이역에서 기차가 멈췄을 때도 뛰어내릴 용기조차 없게 만든다.  
 
장편소설 2권 쓰겠다는 장대한(?) 결심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희망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현이 가능한 지 아무도 모른다.  
 
연극의 주인공은 낡고 찢어진, 혹은 찬란한 망토를 두르고 막이 내리기 전 가장 높은 옥타브로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쓰러져도 인생의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는 신의 명령을 거부하고 맞선 대가로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산 꼭대기에 다다른 바위는 다시 굴러떨어지고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반복은 영원히 계속된다.  
 
매일 같은 일, 반복적인 일상을 계속하며 생의 바위를 각자의 등에 업고 끊임없이 산을 오른다. 허무의 신발가게에서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절뚝거리면 산다.  
 
우리가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무의미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면, 삶은 계속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가? 매일 같이 일하고, 버티고, 성취하려고 애쓰지만 세상은 좀처럼 해답을 주지 않는다. ‘왜 사는가?’는 질문 앞에서 세상은 침묵한다.  
 
카뮈는 이 침묵과 충돌하는 인간의 갈망을 ‘부조리’라 간파한다.  
 
부조리(不條理)는 이치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말한다. 부조리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간과 세계, 생의 의미와 실제 생활과 불합리한 관계를 말한다.  
 
알베르 카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알제리 출신으로 짧지만 강렬한 불꽃을 태운 작가다.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삼년 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카뮈는 시상식에서 “작가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역사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존재여야 한다”는 감동적인 연설을 남긴다.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운명 속에서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고 설명한다.  
 
어린 시절 가난과 질병, 전쟁을 경험하며 인간의 존엄과 희망을 체험한 카뮈는 삶의 불합리함을 체험한다. 카뮈의 철학은 부조리 속에서도 살아가는 인간의 참다운 유형을 보여준다. ‘내 안의 태도가 삶을 결정하고, 환경이 힘들어도 내면의 힘은 꺼지지 않으며,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내 안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는 카뮈가 절망을 견디는 인간에게 던지는 통찰의 독백이다.  
 
겨울이 봄을 이길 수 없고 희망은 절망을 이긴다.  
 
사는 것이 힘들어도 무거운 바위를 내려놓치 않고, 흔들리며 갈피를 못잡아도 나비처럼 날아오르며, 부서진 바위처럼 금이 생겨도 단단해지는 법을 익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은 내일을 가슴 속에 품는다.  
 
절망의 길목에서, 희망은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고 빛나는 꽃을 피운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