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면 녹음을 해도 대부분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상대방 몰래 녹음하는 것은 어떨까? 미국 연방법은 대화에 내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면 상대방 몰래 녹음해도 된다. 심지어 대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대화에 참여한 사람 중 한 사람만 미리 동의했다면 제3자가 다른 대화 참여자들 몰래 녹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녹음이 범죄나 불법행위를 저지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거나, 제3자가 통신을 몰래 가로채는 행위라면 여전히 불법이다.
연방법은 이렇지만,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다. 어떤 주는 연방법처럼 대화 참여자 한 사람만 동의하면 되지만, 어떤 주는 대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동의해야만 한다. 녹음 버튼 하나를 눌렀을 뿐인데, 어떤 주에서는 합법이고 다른 주에서는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리노이주는 한때 이와 관련해서 가장 엄격한 주였다. 과거 일리노이주 법에 따르면, 대화 참가자 전원의 동의 없이 녹음하면 원칙적으로 처벌될 수 있었다. 법의 범위가 너무 넓다 보니, 극단적으로 보면 야구장에서 고함치는 사람의 목소리조차 그의 허락 없이 녹음하면 불법이라고 해석할 여지도 있었다.
결국 2014년 3월, 일리노이주 대법원은 이 법에 브레이크를 건다. People v. Melongo와 People v. Clark 사건에서 법원은 기존의 법이 지나치게 광범위 해서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두 가지 사건은 피고인이 공무원이나 판검사가 한 말을 녹음해서 문제가 된 경우였다. 법원은 프라이버시 보호는 중요하지만, 공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진 대화까지 전부 녹음을 금지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판결한다. 그리고 2014년 12월 30일부터 새로운 법이 시행됐다. 새로운 일리노이주 법은 녹음을 무조건 풀어준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질문을 먼저 던진다.
“이 대화는 사적인 대화인가?”
현재 일리노이 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적(Private)’이라는 단어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비공개이며 은밀한 대화라고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사적인 대화를 상대방 모르게 몰래 녹음하면 불법이다. 반대로 공개된 장소에서의 대화나 공적 성격이 강한 대화는 그렇지 않다. 결론적으로 현재 일리노이 주법은 “모든 녹음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대화를 몰래 녹음”하면 불법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화에 참여한 사람이 자신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합법이다. 한국에서는 ‘참여’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대화 참여자의 녹음은 상대방이 몰라도 합법이다. 하지만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남의 대화를 녹음하면 불법이다.
정리해 보자. 미국의 연방법은 한 사람만 동의하면 대화 녹음이 가능하고, 대화에 참여한 한 사람만 동의하면 제3자 녹음도 가능하다. 하지만 일리노이주에서는 대화 참여자라 해도 사적인 대화를 몰래 녹음하면 불법이다. 한국에서는 당사자 자신이 포함된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전부 가능하지만, 제3자의 녹음은 금지다.
같은 녹음이라도 누가 했는지, 어디서 했는지, 어떤 대화 내용을 녹음했는지에 따라 불법도 되고 합법도 된다. 하지만 매일 대화를 하고 있는 우리는 합리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 우리 대화의 상대방이 대화를 녹음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내 의사에 반해 내가 한 말이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말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