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보수는 궤멸적 위기에 빠져있다. 특히 구심점인 제1야당 국민의힘이 그렇다. 15대 1로 예측되는 지방선거 전망도 암울하지만 일상의 무능과 무기력이 더 큰 문제다. 당명을 바꾼다고 했다가 못하고, 지방선거 1호 공약을 발표하겠다고 했다가 전격 취소하고, 공천관리위원장은 두 번이나 사퇴했다. 정당으로서 정상적 기능을 못 한다.
오·이·한 삼각편대론 해법 급부상
간판 바꿔 위기 넘기는 꼼수 불과
진짜 감동은 ‘분노의 정치’ 대신
평범한 사람들 문제 해결서 나와
탈이념의 시대에 반드시 ‘보수’가 살아남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입법부와 집행부를 장악한 강력한 집권 세력을 견제할 야당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제어되지 않는 권력은 오만과 독선을 낳고 결국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고장 난 국민의힘을 고칠 수 있을까.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인물론에 기댄 해법이 나온다. 오세훈, 이준석, 한동훈이 연대해서 앞에 나서면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소위 ‘삼각편대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국민은 그런 것에 감동하지 않는다. 간판을 바꿔 위기를 넘기려는 시도는 이미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영입할 때 한번 써먹었다. 증상이 위중할 때는 보다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 기본으로 돌아가 정치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되짚어보고 그 일을 잘해야 국민의 지지를 되찾을 수 있다. 이 시대 정치의 임무는 무엇일까. 사회적 약자의 보호라고 생각한다. 시야를 한번 넓혀 보자.
우리가 사는 세계는 갈수록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만 편향된 정보를 교환하면서 대화를 하고, 성향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서는 공공연하게 적개심을 드러낸다. 이른바 세계화의 부작용이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화의 물결은 과거 인류가 꿈도 꾸지 못했던 부와 생활 수준의 향상을 가져왔지만 그 혜택을 소수가 독점함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좌절과 열등감을 겪게 했다. 극소수의 부자들은 몇 대를 내려가도 다 쓸 수 없는 부를 축적한 반면 대다수 ‘루저’들은 자존심을 지켜줄 번듯한 직장을 갖기도 어려워졌다. 인공지능(AI)의 본격적 등장은 이런 경향을 더욱 심화할 것이다.
이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 ‘분노의 정치’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특정 집단의 탓으로 돌려 정권을 차지하는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는 것은 자국 제조업이 몰락한 것을 외국 탓으로 돌림으로써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분노를 끌어내고 정치적 동력으로 삼으려는 계산 때문이다. 정치적 양극화, 민족이나 종교적 차이로 인한 극심한 갈등, 심지어 젊은 층에 상수로 자리 잡은 젠더 갈등까지 그렇게 이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진영이 영리하게 분노의 정치를 활용해 왔다. 사회적 모순이 드러날 때마다 ‘친일파로부터 이어져 온 기득권 세력’의 탓을 하는 것은 미국의 쇠락을 ‘딥 스테이트’의 음모로 돌리는 트럼프의 행보와 똑같다. 문재인 정부 때의 ‘적폐청산’, 이재명 정부의 ‘내란청산’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에도 그런 논리가 깔려있다.
그러나 분노의 정치는 실제로 어떤 사회적 과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가장 큰 피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향한다. 그 요란했던 적폐청산 운동으로 우리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는가? 이재명 정부가 5년간 내란청산에 올인하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전 세계를 휘몰아치던 분노의 정치가 서서히 외면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국민의힘은 이 지점에 집중해야 한다. 민주당이 던지는 ‘검찰개혁’ ‘공소취소’ ‘연어 술 파티’ 같은 정치적 구호가 실제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는 별 상관없는 공허한 얘기라는 점을 부각하고 진짜 중요한 문제를 들이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대구 서문시장 외에 서민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찾아 관심을 끌어낸 일이 있었던가. 노란봉투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을 비판하지만, 실제로 하청 노동자들을 만나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알아보거나 혹은 산재 사망자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가. 민주당이 하는 분노의 정치를 따라 하면서 그보다 못하는 것. 그것이 지금 야당의 현주소다.
진보의 강점이 말에 있다면 보수의 강점은 실제로 변화를 이루어내는 능력에 있다고들 한다. 국민의힘은 그곳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실제로 겪는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국민적 관심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보수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윤어게인’이 실패한 것은 탄핵당한 대통령을 지키자는 황당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과 상관없는 공허한 구호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몰락하는 것은 사실 상관없다. 그러나 하나의 세력이 교체 가능성도 없이 계속 집권하리라는 전망은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보수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