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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아버지의 노래, 나의 노래

Los Angeles

2026.04.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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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아 수필가

엄영아 수필가

정년퇴임 후 남편과 함께 ‘가요무대’를 시청하는 일이 소박한 일상이 되었다. 브라운관 너머로 흐르는 옛 노래들은 대개 어린 시절 아버지의 곁에서 함께 듣던 곡들이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가락들은 여전히 마음의 결을 울린다. 음악이란 세대를 이어주는 가장 특별한 언어임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다.
 
화면을 채우는 익숙한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잊고 있던 가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술 끝에 맺힌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 했던가. 처마 끝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오랜 시간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들은 내 기억의 방에 깊게 새겨져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무대 위로 흐른 곡은 ‘꿈에 본 내 고향’이었다. 전주가 흐르자마자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곡조를 정확히 짚어내며 노래를 부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노래에 젖어 살짝 우수에 차 있던 그 얼굴, 허스키한 목소리로 나직이 읊조리던 그 음색이 기억 속에서 따뜻하게 숨을 쉰다.
 
아버지는 참 노래를 좋아하셨다.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아 목소리가 조금 쉬었지만, 그 허스키한 음색은 우리 가족에게 무엇보다 특별한 위안이었다. 노래 솜씨가 빼어났던 막내 이모는 “형부는 참 멋지게 노래를 부르시네요”라며 감탄하곤 했다.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는 단순한 가락 이상이었다. ‘꿈에 본 내 고향’을 부르실 때면 청년 시절 떠나온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두고 온 벗들을 향한 향수, 그 멜로디 너머에는 아버지의 삶과 사랑, 그리고 고단했던 세월의 추억이 농축되어 있었다. 그 어떤 음반보다 따뜻했던 아버지의 노래는 오직 가족만이 이해할 수 있는 깊은 울림을 품고 있었다.
 
이제 아버지를 곁에서 뵐 수는 없지만 아버지가 남긴 노래들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흐른다. 노래는 단순히 과거를 소환하는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 노래들이 불러오는 것은 잊고 지냈던 온 기억이며 생의 고비마다 나를 다독여준 무언의 격려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가 즐겨 부르셨던 노래를 가만히 흥얼거려 본다. 강물이 굽이쳐 흐르듯, 옛 노래는 내 마음의 마른자리를 적시고 그 시절의 눈 부신 햇살을 되살려 놓는다.  
 
아버지의 노래는 세대를 건너 내게 도착한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자, 지금 이 순간도 나와 함께 흐르는 사랑의 선물이다. 

엄영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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