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AI 쓰기 싫다”…직장서 ‘종교 충돌’ 시작되나

Los Angeles

2026.04.20 21:14 2026.04.21 09:2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직장 내 AI 도입 확산 따라
새로운 법정 분쟁 발생 전망
대법, 노동자에 유리한 판결
"기업들 신중하게 대처해야"
직장 내 인공지능 사용이 늘어나면서 종교적인 이유로 인공지능 사용을 거부하는 사례와 법적 분쟁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직장 내 인공지능 사용이 늘어나면서 종교적인 이유로 인공지능 사용을 거부하는 사례와 법적 분쟁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직장에서 인공지능(AI) 사용이 많아지면서 직원들이 종교적 이유로 이를 거부할 경우 회사와 새로운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학 교수들과 노동법 전문 변호사들은 2023년 연방대법원이 종교적 편의 제공 기준을 종업원에게 유리하게 판결한 점을 들어 기업들이 이런 요구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시 '그로프 대 디조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1977년 판례를 뒤집고 고용주가 종업원의 종교적 요청을 거부하는 기준을 강화했다. 1977년 판례에서는 고용주가 종업원의 요청을 수용하는 데 아주 작은 비용만 발생해도 과도한 어려움이라고 인정했다. 2023년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업 규모와 사업 성격을 고려할 때 감당하기 힘든 실질적 타격이 있어야 한다고 기준을 크게 강화했다.
 
에모리대학교 법과종교연구센터의 바트니 바스 소장은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현재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례가 6개월 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바스 소장은 "종교와 테크 모두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은 매우 다양하다"고 전망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3년 안에 미국 내 직업의 50%~55%가 AI와 연관해 재편될 전망이다. 직무 자체는 바뀌지 않아도 업무 방식이 AI와 연관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종교계도 AI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직장에서 종교적 편의 제공을 둘러싼 판단 기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티칸은 지난해 가톨릭 기관을 위한 AI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에 기반한 도덕적 책임"을 강조했다. 가이드라인은 "AI가 창의성을 훼손하거나 노동자를 단순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남침례교회 역시 2023년 발표한 결의문에서 "신기술 활용에 있어 인간의 존엄성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장애인 접근성 등 기존의 법적 분쟁에 더해 종교적 편의 제공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일리노이대학교 어바나-샴페인 법과대학의 마이클 르로이 교수는 극단적 선택과 연관이 있다는 비판을 받은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나 이민자와 관련이 있는 테크 등 이전에는 없던 문제에서 종교적 신념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무언가를 거부하는 것이 반드시 종교 지도자의 공식 입장이나 경전의 구절을 근거로 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까다롭다. 1964년 민권법에 따라 '진정성 있는' 신념이면 보호 대상이 된다.
 
전문가들은 노동의 본질에 대한 종교적 관점이나 우상 숭배에 반대하는 신념 같은 광의의 근거를 인정할 수도 있다고 본다.  
 
2015년 버지니아주 사례를 보면 AI 혁신이 진행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훨씬 더 다양한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당시 버지니아에서 생체 인식 방식의 손 스캐너 사용을 거부한 노동자가 석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종교적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에 5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노동자는 손 스캐너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의 표식'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 복음주의 기독교 신념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다. 르로이 교수는 "이 판결은 고용주가 종교적 신념의 진정성을 임의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라고 평가했다.
 
법원은 종교적 신념을 주장하는 직원에게 경전이나 교리상의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종교적 이유로 코로나19 백신을 거부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법원은 종교를 매우 폭넓게 정의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교회 소속일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 개인의 삶과 정신을 지배하는 신념이라면 모두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무신론자에게도 적용된다. 직장에서 기도에 참여하라고 강요를 받은 무신론자가 승소한 사례도 있다. 단 한 사람만의 신념이라도 진정성이 있다면 보호를 받는다.
 
법적 환경은 최근 더욱 노동자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로프 대 디조이' 판결 이후, 백신 의무화와 종교적 휴일, 수염, 성별 대명사 사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련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연방 항소법원은 새로운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제1순회항소법원은 기업의 규모와 운영 방식, 비용 구조 등을 고려하는 개별 사안 중심의 접근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꼭 고려해야 할 것은 직원의 신념이 아니라 종교적 편의 제공에 따른 비용이라고 강조한다. 직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점도 중요하다. AI 활용이 필수적인 엔지니어 업무는 예외를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AI를 부수적으로 사용하는 업무는 상대적으로 예외 인정이 쉬울 수 있다.
 
역설적인 면도 있다. AI 활용이 늘수록 기업이 예외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기 쉬울 수 있다. 지금은 합리적인 종교적 편의로 보이는 요구가 1년 후에는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AI 사용이 늘수록 회사가 유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안유회 객원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