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을 타고 올해 1분기 한국 경제는 예상 밖으로 강하게 반등했다. 1분기 성장률은 1.7%로 5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
하지만 같은 기간 소비심리는 1년 만에 기준선 아래로 떨어졌다. 반도체가 성장세를 이끌었지만 물가 상승 우려에 체감 경기는 차갑다.
한국은행은 23일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1.7% 성장했다(속보치)고 밝혔다. 이는 지난 2월 전망치(0.9%)의 두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2020년 3분기(2.2%)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로, 지난해 4분기 역성장(-0.2%)에 따른 기저효과도 반영됐다.
한은은 이번 성장의 배경으로 ▶민간소비 ▶반도체 중심 수출 ▶설비투자 확대 등을 꼽았다. 민간소비는 의류 등 재화 소비 증가로 0.5% 늘었고, 설비투자는 기계류와 운송장비를 중심으로 4.8% 증가했다. 건설투자 역시 건물·토목 공사가 모두 늘며 2.8% 성장했다.
국내총생산
성장을 이끈 핵심은 반도체 수출이다. 1분기 수출은 5.1% 증가하며 2020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반도체 업황은 기업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는 1분기 매출 133조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 역시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37조6103억원으로 급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이동원 한은 경제통계2국장은 “반도체 제조업 기준으로 봤을 때 성장 기여도는 약 55%”라고 설명했다. 이를 제외하면 성장률이 절반 이상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제조업은 1분기 3.9% 증가해 2020년 4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지만, 서비스업 증가율은 0.4%에 그쳐 업종 간 격차도 뚜렷했다.
문제는 이런 성장세가 체감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동전쟁 여파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전년 동월 대비)로 높아졌다. 같은 달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16.1% 올라 외환위기 이후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다. 전쟁 영향은 1분기에는 제한적이었지만 유가와 공급망 불안이 일부 지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4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9.2로 전월보다 7.8포인트 급락하며 1년 만에 기준선(100)을 밑돌았다. 향후 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기대인플레이션)는 전월보다 0.2%포인트 오른 2.9%로 집계됐다. 이는 2024년 12월(2.9%) 이후 1년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정성태 삼성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통상 소비심리 급락은 시차를 두고 민간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김주원 기자
성장 전망 역시 불확실성이 크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상반기 호조 이후 하반기로 갈수록 둔화하는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유병희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중동전쟁 영향이 1분기에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물가를 통해 2분기부터 점차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며 “건설 자재 수급 차질 등은 향후 성장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쏠림도 리스크로 지목된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1분기 성장률은 반도체 호황이 다른 산업 부진을 덮은 측면이 크다”며 “향후 인공지능(AI) 거품론 등으로 반도체 수요가 꺾일 경우 한국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이 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금리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진욱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근원물가 상승세가 장기화할 위험이 커졌으며 재정 정책의 적극적인 역할 등을 고려했을 때 내년 2~3분기까지 한은의 최종 기준금리가 연 3.25%~3.50%로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