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가가 우리가 사는 현실을 ‘의무의 공간’이라고 표현한 것이 내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우리 주변은 언제나 해야할 일로 가득 차 있다고 얘기했다.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사소한 일도, 언젠가는 해치워야 할 해묵은 숙제들이 늘 우리에게는 있다. 이런 ‘의무’에서 벗어나려 우리는 여행을 한다. 채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덜어내기’ 위해서도 여행을 한다. LA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운전하면 보통의 여행과는 다른 여백이 있는 오하이(Ojai)를 만날 수 있다. 보통의 여행은 채우기 위해서 한다. 유명한 맛집에 줄을 서고, 랜드마크에서 사진을 찍고, 촘촘한 일정표를 해치우듯 여행하곤 한다. 하지만 산타바바라 동쪽, 벤투라 카운티에 위치한 오하이(Ojai)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당신의 일상을 덜어내라.”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제안한다.
추마시(Chumash)어 ‘Awha'y '(달)에서 유래된 오하이(Ojai)는 1837년 페르난도 티코라는 사업가가 멕시코로부터 란초 오하이 소유권을 받아 소 목장을 운영하며 개발되기 시작했다. 1874년 부동산 개발업자 알지 서댐(R.G. Surdam)이 이곳에 이주했고,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찰스 노드호프의 이름을 빌려 이곳을 ‘노드호프(Nordhoff)’라 명명했다. 이곳에 있는 노도프 주니어 하이 & 하이 스쿨(Nordhoff Junior High & High School)은 이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부유한 동부 사람들에게 겨울 휴양지로 인기를 끌었던 노드호프(Nordhoff)는 1차 세계 대전으로 미국에 반 독일 정서가 심해지면서 1917년 ‘오하이(Ojai)’로 이름을 바꿨다. 1917년 두 번의 화재로 마을의 대부분이 불에 타 버렸고, 20세기 초 미 서부에서 유행하던 스페인 식민시대 복고풍 건축 양식으로 마을을 재건하였다. 지금 오하이(Ojai) 랜드마크인 다운타운 아케이드의 둥근 아치형 기둥과 높이 선 종탑이 그 스타일이다. 1933년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집필할 때, 오하이(Ojai) 계곡의 평온하고 신비로운 풍경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이곳의 풍경을 바탕으로 영원한 행복과 평화가 존재하는 낙원 '샹그릴라'를 묘사했다. 그래서 오하이(Ojai)는 '미국의 샹그릴라(Shangri-La)'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느리고 졸린 마을’의 매력으로, 바쁜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을 권하고 있다.
오하이(Ojai)에는 체인점이 없다. 일부 주유소 체인점과 은행이 있지만 이마저도 면적 제한이 까다롭다. 시 조례를 통해 체인점 입점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부 시민들이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주장하며 반대했지만, 대다수 주민들이 거대한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고 독특한 분위기의 마을을 만드는데 찬성했다. 미국 어디든 볼 수 있는 스타벅스, 맥도널드와 같은 체인점을 여기선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수십 년 된 중고 서점, 동네 농장에서 갓 가져온 유기농 농산물을 파는 마켓, 로컬 예술가들의 작업실이다. 거대한 시스템 대신 조금은 투박하고 느린 '로컬의 리듬'에 나를 맡기다 보면, 효율성만을 따지던 일상의 강박이 자연스럽게 덜어지며 묘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오하이(Ojai)에서는 기다려야 한다. 해 질 녘, 오하이 밸리를 감싸고 있는 토파토파 산맥(Topatopa Mountains)은 마법 같은 색을 만들어낸다. 태양의 잔광이 산맥의 암벽에 반사되어 온 세상을 은은한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핑크 모먼트(Pink moment)'의 시간이다. 이 짧은 찰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산을 바라본다. 늘 손에 쥐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빛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그 순간, 복잡했던 머릿속 생각들은 핑크빛 공기 속으로 흩어진다. 자연이 주는 시각적 휴식인 이 때, 자연과 인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어떤 이들은 정서적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명상의 감각을 자극한다. 인도 출신의 철학자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는 인생의 대부분을 오하이(Ojai)에서 보냈다. 그는 이곳의 평온함 속에서 인류의 근원적인 자유와 명상에 대해 탐구했고, 그가 머물던 곳은 크리슈나무르티 교육 센터가 되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명상과 자기 성찰의 공간을 제공한다.
오하이(Ojai)의 '덜어냄'을 상징하는 공간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바츠 북스(Bart's Books)’이다. 1964년에 시작된 이 서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서점' 중 하나이다. 지붕도, 벽도 없이 나무 아래 책들이 꽂혀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햇살을 받으며 책장을 넘긴다. 서점이 문을 닫은 밤에도, 길가에 놓인 책장에 동전을 던져 넣고 책을 가져가는 '무인 시스템'이 운영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이 소박한 방식은, 현대 사회의 불신과 그 거래 양식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선함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편리한 리조트와 화려하고 자극적인 콘텐츠 대신, 작고 조용한 가게와 평범한 하늘이 이어진 이곳은 “할 게 없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곳이라 금세 떠나게 만드는 곳일 수도 있을 것이고, “할 게 없다.”를 받아들인 어떤 사람들에게는 해야할 압박이 사라져,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계기를 줄 수도 있다.
글이 전혀 써지지 않던 상태로 슬럼프를 겪고 있던 어느 작가가 오하이에 머물렀다. 며칠 동안 그는 아무 것도 쓰지 못했고, 점점 더 초조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 길가에 오렌지 나무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뭐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이후 다시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영감이 떠오른 것이 아니라, 머릿속 소음이 사라졌을 뿐이다.”
푸른투어에 하루를 비워 오하이(Ojai)를 찾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덜어내고 싶다면, 푸른투어에 문의해보기를 바란다. (213-739-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