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울산시 남구 신정동 초밥집 스시은에서 공용자(74)·장정희(71)·백현자(63)씨가 자신들이 만든 초밥을 앞에 두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울산 남구시니어클럽]
“언니 오늘은 모둠 초밥이 먼저 나가요. 고추냉이 양 조절 부탁해요.”
지난 20일 오전 울산시 남구 신정동 초밥집 ‘스시은(銀)’. 점심시간을 앞둔 주방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두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직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한쪽에선 유부초밥을 만들고 다른 쪽에선 우동을 끓였다. 김미경(63)씨는 “집에선 하루가 잘 안 갔는데, 여기선 시간이 아주 잘 간다”고 했다. 스시은에는 주방을 총괄하는 요리사를 제외한 나머지 17명 모두가 60대 이상이다. 62세가 막내, 최고령은 74세다. 이들은 단순 서빙이나 청소에 머물지 않는다. 초밥을 만들고 횟감을 정리하고, 주먹밥도 만든다. 정순아(69)씨는 “요즘 회 뜨는 것을 배운다. 이 나이에 뭘 배우겠나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된다”고 했다. 스시은은 노인 일자리 차원에서 울산 남구청·남구시니어클럽이 지난해 말 문을 열었다. 김형무(41) 요리사는 “처음엔 호흡을 맞추는 게 조금 어려웠지만, 지금은 척척 잘 맞는다. 배우시는 것도 빠르다”고 했다. 이들은 교대로 한 달에 50시간가량 일하고 60만원 정도 받는다.
한국 50세 이상이 38%, 시장 규모 85조
같은 날 오후 전남 영암군 삼호읍 정개 마을회관 앞에 도착한 이동식 빨래방인 기찬빨래방. 초밥집 스시은, 기찬빨래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60세 이상이다. 황희규 기자
같은 날 오후 전남 영암군 삼호읍에 있는 정개 마을회관 앞에 ‘찾아가는 기(氣)찬 빨래방’이라는 글씨가 적힌 5t 탑차가 서 있었다. 차안에는 세탁기 6대와 건조기 3대가 쉴새없이 돌아갔다. 차량 내·외부에서 어르신들이 이불을 접거나, 옮기는 등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영암군을 도는 기찬빨래방에는 25명이 교대로 일하는데 모두 60세 이상이다. 김문용(72)씨는 “빨래는 섬유·화학·기계·서비스가 결합된 기술직”이라며 “예전에 병원 이불을 세탁하는 업체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체 건강하고 경제 활동이 가능한 60세 전후의 젊은 고령층을 일컫는 ‘욜드(Yold, Young Old) 족’이 노동과 소비를 바꾸는 중심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인구의 37.5%가 50세 이상이다.
박경민 기자
이들의 사회 참여가 증가하면서 욜드족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도 커지는 추세다. 글로벌마켓스태티스틱스의 ‘실버 경제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욜드 시장 규모는 지난해 3조329억달러(4450조원)에서 2034년 5조4075억달러(8000조원)로 확대할 전망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 욜드 시장은 85조원 규모다.
박경민 기자
욜드족은 축적된 지식·경험을 바탕으로 은퇴 후에도 쉬지 않고 활발하게 사회생활에 참여하고 있다. 문화·여가·배움·사회 참여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자신의 경험·역량을 계속해서 발휘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26년간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정용채(61)씨는 몇 년 전 퇴직 후 한양대(ERICA캠퍼스)에서 산학협력 중점교수로 일했다. 그렇게 일하면서도 틈틈이 전기 분야를 공부해 전기기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는 “얼마 전 다리를 다쳐 일을 못하고 있지만, 다리가 나으면 전기기사 자격증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다시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욜드족이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관련 정책도 변하는 추세다. 기존 시니어 정책은 주로 복지·부양의 관점이었다면, 최근엔 이들의 사회 참여를 적극 지원하고 전문성·재능을 살리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울시 강동50플러스센터는 각종 기술 교육 지원 등을 통해 지난해 709명의 욜드 세대 취업·창업을 지원했다.
박경민 기자
“경력·전문성 반영 맞춤형 일자리 제공을” 제주공항은 퇴직 경찰관·소방관, 항공 전문가 등 시니어로 구성된 ‘제주국제공항 불법 드론 시니어 감시단’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공항은 감시단원을 지난해 16명에서 올해 100명으로 대폭 늘렸다. 시니어 감시단으로 일하는 김성봉(65)씨는 “경찰로 36년을 살아온 만큼 수상한 이들의 행동을 누구보다 잘 포착할 수 있다”며 “공항 주변에서 드론이 날게 되면 항공편 전체가 마비되는 만큼 온 신경을 집중해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욜드족이 사회·경제 전반에 영향을 확대해 가고 있지만, 사회적 인식이나 정책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높다. 정부·지자체가 욜드족에게 제공하는 일자리의 상당수는 저임금 일자리가 중심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시니어 일자리 참여자의 70%는 월평균 활동비가 30만원 미만이다. 강혜정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사회서비스부장은 “노년층 일자리 수요가 다양해지는 만큼 개인의 경력과 전문성을 반영한 맞춤형 일자리 제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책이 세분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대중교통 무료처럼 특정 연령 이상 전원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보다는 특성에 맞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장은 “신체·인지 기능이 우수하고 사회 참여가 활발한 욜드족에겐 가치지향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정책을, 취약계층에겐 생활밀착형 정책을, 이들 사이에 있는 욜드족에겐 재교육에 중점을 두는 등 세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