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준비 와중에 이루어진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갑작스러운 방미는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뜬금없는 행보는 결국 빈손 논란을 넘어 거짓말 파문으로 번졌다. 미 국무부 차관보를 만났다는 성과 자랑은 33세의 차관 비서실장 면담으로 드러났고, 결국 “실무상 착오”라는 군색한 변명이 따랐다. 그러나 이 소동의 저류에는 명확한 의도가 읽힌다.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후광에 기대 타개하려는 ‘트럼프 마케팅’이다. “트럼프가 항공모함을 보내 윤석열 전 대통령을 구출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윤 어게인’ 세력에 어필하려는 걸까.
지지율 15% 충격에도 책임 회피
객관·논리 대신 자아도취와 궤변
리더 스스로 조직의 리스크 전락
8박10일 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마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지난 20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실제로 그는 방미 중 트럼프의 ‘영적 멘토’라는 폴라 화이트(백악관 신앙사무국장) 목사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그를 통해 잘만 하면 트럼프와의 깜짝 만남까지 연출해 보겠다는 계산이었을 터다. 장 대표가 이재명 정부를 향해 ‘FAFO(까불면 다친다)’라는 문구가 적힌 트럼프의 사진을 SNS에 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트럼프식 공격적 화법을 자신의 정치적 문법으로 내면화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장 대표와 트럼프의 접점은 기독교적 세계관, 그중에서도 근본주의의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 기반 중 하나는 복음주의 개신교 세력이다. 복음주의의 넓은 스펙트럼 맨 오른쪽에는 근본주의 세력이 있다. 피터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속한 개혁복음주의교회연합(CREC)이 대표적이다. 헤그세스는 자신의 저서(『전사들의 전쟁』)나 인터뷰 등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정책 대결이 아니라 서구 기독교 문명을 파괴하려는 악의 세력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해 왔다. 이들에게 정치는 타협과 공존의 장이 아닌, 선과 악이 격돌하는 ‘영적 전장’이다.
독실한 개신교도인 장 대표의 언어 역시 이 지점에 닿아 있다. 그는 보수 집회에서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거나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손현보 목사의 부산 세계로교회를 찾기도 했다. 판사 출신 정치인의 합리성보다는 종교적 근본주의의 언행에 가깝다.
심지어 당내 정치에서마저 이런 ‘영적 전쟁’의 모습이 보인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 지지율이 15%로 추락했다는 충격적인 성적표 앞에서도 그는 자성 대신 ‘해당 행위자 숙청’을 외쳤다. 마치 배교자를 처단하려는 종교적 열정처럼 보인다. 자신을 향한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사퇴야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자신이 십자가라도 맸다는 걸까. 궤변에 가까운 장동혁식 책임 정치다.
선거를 40일도 채 안 남긴 시점에서 후보 교체까지 불사하겠다는 엄포는 정치 상식 밖의 일이다. 정책 경쟁이 사라진 자리에 ‘내부 식별’과 ‘숙청’의 언어만 가득하다. 지금 장동혁과 트럼프는 리더 자신이 조직의 가장 큰 리스크가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극단적인 팬덤에 매달리고, 상식적인 조언을 공격으로 간주하는 자아도취적 리더십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에서 김민수 최고위원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수 연세대 겸임교수 스레드 캡처
당내 반응은 ‘공포’가 아닌 ‘탄식’이다. 후보들은 대표의 지원 유세를 ‘민폐’로 여길 정도다. 여권으로부터는 조롱의 대상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그가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선거 패배 이후의 정치적 생존 모색 외엔 설명되지 않는다. 장 대표가 “내부 갈등이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라며 벌써 남 탓을 시작했다. 미 연방의사당 앞에서 장 대표와 ‘브로맨스’를 과시한 김민수 최고위원도 “왜 후보가 민주당과 싸우지 않고 당 대표와 싸우냐”며 거든다.
트럼프가 미국 정치를 추락시켰듯, 장 대표 역시 보수 정당의 품격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상식과 논리가 서야 할 자리에 궤변과 자아도취가 떠돌고 있다. 보수의 희극이자 비극적 풍경이다. 그런데 이게 꼭 보수 정치만의 이야기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