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교착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오만 방문 직후 하루 만에 중재국 파키스탄으로 복귀하며 협상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란 관영 IRNA통신은 26일(현지시간) 아라그치 장관이 오만에서 하이삼 빈 타리크 알 사이드 술탄을 예방한 뒤 곧바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가 고위급 면담을 이어갔다고 보도했다. 타스님통신은 “파키스탄 당국자들과의 추가 협의를 위한 복귀”라며 “중재국을 통해 이란의 종전 요구안을 명확히 전달하려는 목적”이라고 전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 AP=연합뉴스
실제 아라그치 장관은 호르무즈해협의 새로운 법적 체제, 전쟁 피해 배상, 재침략 금지 보장, 해상 봉쇄 해제 등을 제시했다고 타스님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현재 논의는 군사 충돌 종식 조건에 집중돼 있으며 핵 문제와는 무관하다”라는 이란 측 입장과 함께 협상 의제를 단계적으로 분리하려는 의도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는 26일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개방과 전쟁 종식을 우선하는 새로운 제안을 미국 측에 전달하고, 핵 협상은 이후 단계로 미루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아라그치 장관은 순방을 통해 외교 접촉도 확대하고 있다. 그는 이날 X(옛 트위터)를 통해 “양자 관계와 지역 정세에 대한 중요한 논의가 있었다”며 “호르무즈 연안 국가로서 안전한 항행을 보장하는 방안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또 셰이크 모하메드 빈 압둘라흐만 알 타니 카타르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도 “휴전 관련 사안과 전쟁 종식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설명했다고 밝히며 이집트·튀르키예·사우디 등과의 접촉도 이어갔다. AP통신은 이를 두고 “직접 회담은 제한됐지만, 간접 접촉이 이어지는 ‘저강도 외교 국면’”이라고 평가했다.
27일엔 파키스탄을 떠나 러시아에 도착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푸틴 대통령은 아라그치 장관과 악수를 나눈 뒤 “이란 국민은 자국의 주권을 위해 용감하고 영웅적으로 싸우고 있다”고 말했고, 아라그치 장관도 러시아의 지지에 감사를 표한 뒤 “모스크바와 테헤란 관계는 전략적 협력 관계이며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이란 IRNA가 전했다. 특히 아라그치 장관은 푸틴 대통령에게 “최고의 축복”을 기원한다는 모즈타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모즈타바는 최고지도자 자리를 승계한 뒤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외국 정상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인 외교 활동에 나선 것이라 주목된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승계 직후 모즈타바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26일(현지시간) 이어진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의 순방 관련 X(옛 트위터) 글. 파키스탄 총리 만남(아래)과 오만 술탄 만남(위). 사진 X 캡처
미국 역시 압박을 이어가는 한편 협상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을 향해 “그들이 대화하고 싶다면 우리에게 오거나 전화하면 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해상 봉쇄의 효과를 강조하며 “그들은 더 이상 많은 돈을 벌 수 없다”며 “막대한 석유가 쏟아지는 송유관이 있을 때 어떤 이유로든 컨테이너나 선박에 계속 실을 수 없어 그 라인이 막히게 되면, 그 관은 기계적 요인으로 지하에서 내부 폭발하게 된다. 그들은 약 사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봉쇄로 인해 이란 송유관이 막히면 관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 석유 산업 재건이 어려워진다는 취지다. 다만 CNN은 석유 전문가를 인용해 이란 석유 시설 상당수가 이미 가동 중단 상태로 폭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장 화법이라고 지적했다.
백악관도 “미국은 카드를 쥐고 있으며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합의만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협상에서 핵무기 관련 사항을 배제하려는 이란의 입장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모하마드 바게르 가리바프 이란 국회의장. 중앙포토
이런 가운데 이란 내부에서는 협상단을 지지하는 움직임도 확인됐다. IRNA통신은 27일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원 290명 중 261명이 대미 협상단을 지지하는 성명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의원들은 “적이 전장과 외교 전선에서 국민과 당국 간 분열을 조성하려 한다”고 비판하며, 협상단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장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표명했다. 이는 최근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된 ‘이란 협상단 권한 약화’ 관측에 대응하는 성격으로 해석된다.
다만 파키스탄 정부가 미·이란 2차 종전 협상 준비로 시행했던 이슬라마바드 레드존 및 협상장 주변 통제를 27일 해제하면서, 당분간 현지에서 협상 재개 가능성은 작아진 것으로 보인다. 1·2차 협상이 잇따라 불발된 가운데 주말 협상도 무산되며, 양국은 당분간 파키스탄을 통한 간접 협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양측은 협상 재개를 모색하면서도 동시에 ‘버티기’ 국면에 들어간 모습이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통제 등 공급을 조이는 카드로, 미국은 비축유 방출과 수요 억제, 해상 봉쇄 유지로 맞서는 구조다. 이와 관련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26일 X에서 “공급 카드와 수요 카드는 결국 균형을 이룬다”고 밝혔다. 호르무즈해협 등 해상 통제를 ‘공급 카드’, 미국의 비축유 방출과 수요 감소를 ‘수요 카드’로 지목하며, 양측이 에너지 시장을 통해 서로를 압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바라본 이스라엘 군인들의 레바논 국경 작전 모습. EPA=연합뉴스
한편 이스라엘과 레바논 전선에서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26일 이스라엘 공습으로 14명이 사망하고 37명이 부상했으며, 이는 지난 18일 휴전 발효 이후 최대 피해 규모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이날 각료회의에서 “이스라엘은 휴전 기간에도 헤즈볼라의 위협에 대응할 권리가 있다”고 밝히며 군사 대응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에 맞서 나임 카셈 헤즈볼라 수장도 27일 성명을 통해 “레바논을 불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중대한 죄악’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며 “이스라엘과의 직접 협상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