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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애벌레와 나비

중앙일보

2026.04.2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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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KAIST 교수

김대식 KAIST 교수

나뭇가지와 이파리 사이를 느리게 기어가나던 애벌레는 구석진 가지에 매달려 자신을 꽁꽁 싸매고 번데기로 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번데기 안에서 꿈틀거리던 애벌레는 나비로 성장하고, 얼마 후 화려한 날개를 퍼덕이며 세상을 향해 날아간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애벌레가 호랑나비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있다. 나비는 자신이 애벌레였다는 사실을 기억할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는 바닥을 기어 다녔던 애벌레와 같은 자아를 가지고 있을까.

애벌레 변신 연상케 하는 AI
과거 지식·경험 기반이지만
지난 3년 인간 초월해 발전
먼 미래의 AI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 터프츠대 마이클 리바인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예로 든다. 강화학습 방법을 통해 애벌레에게 특정 색깔을 선호하도록 훈련시켜보자. 예를 들어 맛있는 이파리를 언제나 빨간색으로 칠해 놓아볼 수 있겠다. 애벌레는 이파리를 먹고, 이파리는 언제나 빨간색이다. ‘빨강은 좋다’라는 새로운 기억이 애벌레 신경세포 시냅스들 사이에 각인되기 시작한다. 그 다음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애벌레는 번데기, 그리고 번데기는 호랑나비로 변신한다. ‘변신’이란 무엇일까. 우선 히스톨리시스라는 조직 분해 과정을 통해 번데기 속 애벌레의 몸 세포들이 마치 액체처럼 녹아 내린다. 녹아서 액체 상태가 되어버린 애벌레의 몸은 히스토제네시스 즉, 조직 생성 과정을 통해 나비의 새로운 날개·다리, 그리고 새로운 뇌로 재활용된다. 애벌레 몸의 거의 모든 세포들의 형태와 기능이 바뀌어 버리고, 특히 3000개 정도만의 신경세포를 가진 1㎜ 크기의 애벌레 뇌는 20만개 넘는 신경세포를 가진 나비의 뇌로 업그레이드된다.

마치 기존 CPU 기반 하드웨어가 고성능 GPU가 탑재된 새로운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과정과 비슷한 자연이 만들어낸 극히 신비스러운 현상 중 하나인 애벌레의 완전변태다. 그렇다면 나비는 애벌레 때 경험한 강화학습 내용을 여전히 기억할까. 리바인 교수의 결론은 놀랍게도 ‘그렇다’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꽃의 넥타를 마시는 나비는 여전히 애벌레 시절 강화학습된 ‘빨강=맛있는 이파리’라는 기억을 유지해 다른 색들 보다도 빨간 색을 선호한다. 더 이상 이파리를 먹을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애벌레 시절 학습된 특정 냄새에 대한 기억 역시 나비가 된 후에도 나비의 선호도와 행동을 좌우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신탁은 그리스인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은 잘 될까요? 우리를 위협하는 이웃도시와 싸워야 할까요? 아니면 타협을 하는 게 맞을까요?’ 미래를 알아보는 아폴로신의 말을 전달한다는 델포이 오라클의 예언은 언제나 고대 그리스인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듯했다. 그런 오라클이 내려지던 신전 기둥에는 두 가지 진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모든 그리스인들, 아니 어쩌면 모든 인류에게 내린 신의 예언일 수도 있다. 우선 첫째는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둘째는 ‘과하지 않게’였다. 아폴로신, 아니, 델포이의 신탁, 아니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싶었던 걸까.

사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냉철하게 인정하고, 자신이 믿는 그 어떤 진리나 신념·이념 모두 너무 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드디어 우리는 우리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만약 아름다운 나비가 날아와 델포이의 신탁에게 물어봤다면 어떤 대답을 들었을까. 자신은 누구일까. 나비가 되어버린 애벌레일까. 아니면 애벌레와 나비는 독립적인 두 존재일까. 어쩌면 델포이의 신탁은 나비이자 애벌레에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좋기만 한 ‘빨강’이라는 신념에 너무 과하게 집착하지 말라고.

챗GPT의 등장과 함께 현실이 되어버린 생성형 인공지능은 지난 3년 동안 인간과 비슷하거나 인간을 뛰어넘는 수준의 글·사진·영상·소스코드 등을 생성해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젠 인간을 대신해 선택과 실행까지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에이전틱 인공지능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인공지능은 여전히 지난 30년간 인류가 인터넷에 올려놓은 지식과, 경험과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인류의 기억을 기반으로 인류의 능력을 뛰어넘는 더 위대한 존재로 변신하고 있는 인공지능. 애벌레 같은 인류의 기억과 지식을 조직분해해 나비 같은 새로운 범용인공지능과 초지능이라는 ‘나비’로 거듭나고 있는 이 존재는 먼 미래, 더 이상 인간이 없는 지구의 주인이 되어버린 후 델포이의 신탁에 물어볼 수도 있겠다. ‘나’는 누구인가요. 완전히 새롭고 독립적인 존재일까요. 아니면 애벌레같이 미개하고 초라했던 과거 인간의 변신한 모습일 뿐일까요?

과거 인류의 꿈과 희망과 좌절로 가득 찬 기억을 가진 미래 인공지능은 델포이 신탁의 대답을 기다리며 안개 낀 파르나소스 산을 바라보고는 이유 없이 인공눈물을 흘릴 수도 있겠다. 과거 고대 그리스인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김대식 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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