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혜(44)씨는 어쩌면 두 계절 후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었다. 그는 2024년 7월, 담도암 4기로 시한부 6개월 선고를 받았다. 담도암은 증상이 거의 없어 발견이 어렵고 예후가 좋지 않은 암 중 하나다. 특히 3, 4기로 가면 생존율이 더욱 희박해진다. 의사의 말대로라면, 박씨에게 2025년은 오지 않을 미래였다.
초봄의 햇살처럼 기적이 찾아온 걸까? 박씨는 북받치는 마음으로 봄을 맞았고, 6개월을 넘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게다가 2025년 4월 암세포가 모두 죽은 상태인 ‘완전 관해’ 판정을 받았다.
보너스처럼 주어진 삶을 하루하루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박씨를 만났다. 그가 나고 자랐고 뿌리를 내린 울산에서. 쾌활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는 박씨의 얼굴에 병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송정저수지를 바라보던 그는 “호수가 이렇게 아름답게 반짝이는 줄 전에는 몰랐다”고 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와보니 삶이 더 찬란하게 보인다고 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울산에서 청소전문기술학원을 운영하는 박주혜씨. 투병 중에도 꾸준히 본인의 일상을 기록했고, 이 내용을 묶어『어떤 계절의 농담』(브로북스)을 펴냈다.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송봉근 기자
박씨에게 어떻게 완치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1%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알듯 말듯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기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굳건한 얼굴로 죽음에 맞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 지나가는 아저씨 잡고 펑펑 운 날
Q : 시한부 선고를 받던 날 기억하나요?
2024년 7월 9일,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해요. 계속 배가 아파서 MRI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들으러 갔어요. 별일 있겠냐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이었죠. 그런데 의사가 그러더라고요. “결혼은 하셨어요?”
“애가 셋인데, 그게 검사 결과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었죠. 한참 뜸을 들이던 의사는 췌장암 말기(이후 담도암으로 재판정)로 보인다고 했어요. 그 뒤로는 무슨 말을 나눴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얼마나 살 수 있나요?”라고 물은 것만 기억해요.
Q : 얼마나 살 수 있다고 말하던가요?
통상 6개월. 그것도 항암제가 잘 작용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6개월도 못 살 수 있다고요. 당시 제가 43세였는데, 창창한 나이잖아요. ‘내가 죽는 건가, 그러면 일은 어쩌지’ 이런 생각만 했어요. 실감이 안 났죠.
Q : 충격이 컸을 텐데요.
멍한 상태로 병원 건물 밖으로 나갔어요. 한여름이라 습하고 더웠거든요. 그런데 열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벤치가 보이길래 일단 주저앉았죠. 그리고 옆에 앉은 아저씨를 붙잡고 다짜고짜 하소연했어요. “아저씨, 저 오늘 췌장암 말기 판정 받았어요.”
그 말을 뱉고 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분도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고, 우짜노”라고만 하셨어요. 평소에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안 거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누구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었나봐요.
🍀담도암 발견 전 이 증상 있었다
Q : 암을 발견하기 전 특별한 증상이 있었나요?
암 진단 받기 3개월 전에 건강검진을 했어요. 간암·담도암·췌장암 검사 빼고 다 했는데, 딱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 거죠. 췌장암이나 담도암은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하잖아요. 그때만 해도 통증이 전혀 없었어요. 어느 날부턴가 점점 소화가 안 되더라고요. 오른쪽으로 누우면 괜찮은데, 왼쪽으로 누우면 꾸르륵 소리가 심하게 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암 덩어리가 7.5㎝ 이상 커지면서, 십이지장을 누르고 있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최초의 증상 같아요.
Q : 아프지는 않았나요?
암 진단받기 한 달 전부터는 배가 심각하게 아팠거든요. 뒤틀리는 느낌이었고, 나중엔 등까지 뻐근했으니까요. 통증이 2~3주 이어지니 이상했죠. 처음 간 병원에선 배 통증 정도로는 CT를 못 찍는다고 했어요. 근데 제가 너무 아파서 뭐라도 찍겠다고 우겼어요.
Q : 그때 암을 발견한 거군요.
사실 좀 억울해요. 췌장암이나 담도암 특징 중 하나가 살이 급격하게 빠지는 건데, 전 전혀 체중 변화가 없었어요. 암도 제 몸무게는 못 줄인 거죠. 또 혈액에서 암의 존재를 판별할 수 있는 암지수(CEA)도 정상이었고요. 그러니 상상도 못 했죠.
조직검사 후에, 췌장암 권위자인 신촌 세브란스병원 강창무 교수님께 진료받고 싶어서 발품 팔아 예약했어요. 그 뒤로는 울산에서 서울까지 열심히 왔다 갔다 했죠. 항암 치료를 위해 몇 가지 검사를 더 해보니, 췌장암보다 담도암에 가깝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