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 등 의료기사가 환자 집에 찾아가는 방문 재활을 활성화하는 내용의 ‘의료기사법’의 개정안이 표류하고 있다. 환자단체 등은 "거동이 불편한 국민의 건강 관리를 위해 필요하다"며 찬성 입장이나 의료계는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대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28일 국회에 따르면 이날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에 상정될 예정이었던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해 안건에서 제외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료기사는 의사나 치과의사의 ‘지도’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개정안은 해당 조항을 ‘지도 또는 처방·의뢰’로 고쳐 의료기사의 활동 범위를 보다 넓히는 내용이다. 법적으로 의료기사에는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이 포함된다.
현행법은 의사의 물리적 지도를 필수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어 노인과 장애인이 집에서 재활 서비스를 받는 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의사의 지도 대신 처방·의뢰만으로도 의료기사가 방문해 재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자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의 '재활환자 재택의료사업’이 2020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진행됐지만,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본사업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통합돌봄이 전국에 시행되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통합돌봄의 제도 취지에 따라 방문재활, 방문영양 서비스의 제공 규모를 확대하고 제도화하려고 하고 있다.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지난 27일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법안을 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역구 사무소를 찾아 법안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처방이나 의뢰만으로 의료기사의 업무 수행이 가능해지면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황규석 의협 부회장(서울시의사회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의료기사가 의사의 지도 없이 의료 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는 것에 의료계는 동의할 수 없다. 의뢰만으로 치료하다가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해질 수가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의료기사들은 개정안에 찬성한다. 대한의료기사단체총연합회는 지난 24일 집회를 열고 “의사협회가 모든 의료행위가 반드시 의사의 지도 아래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잣대로 국민의 선택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 수요자인 환자단체들도 ”거동이 불편한 국민이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집에서 필수적인 재활서비스를 받을 정당한 권리 확대 가로막는 것“이라며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의료계의 반발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 관계자는 “개정안에 '의료기관 소속 기사만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료계의 입장을 반영했는데도 (의료계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 법은 안전을 이유로 의사의 지도를 받도록 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어느 정도 안전성이 담보된 측면도 있기에 환자의 편의와 필요를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며 “환자의 건강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고 환자 편익이 크다면 의료기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