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말보로 뭐꼬?” 형사 조롱했다…대구 골목 27번이나 턴 그놈 [上]

중앙일보

2026.04.28 12:0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더 베테랑-끝까지 잡는다
“전국 베테랑 형사들이 직접 꺼낸 단 하나의 ‘크라임 신’.”

중앙일보와 경찰청이 협업해 사건 해결의 결정적 장면을 베테랑 형사들의 시선으로 기록합니다. 영화나 소설처럼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형사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순도 100% 진짜 사건. 작은 티끌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베테랑들의 집념과 생생한 추적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이 기사는 모준영 형사의 구술을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2006년 7월 19일 오전 1시. 27번째 사건 발생일.
대구 중구 북성로 오토바이 골목. 새벽의 골목은 텅 비어 있다.

낮의 골목은 살아 숨쉬었다. 각종 오토바이 부품과 공구들이 뒤엉켜 쇳가루가 풀풀 흩날리고, 구석구석 눅진한 윤활유 냄새가 골목을 가득 채운다. ‘깡깡, 부릉부릉.’ 철물끼리 몸을 부딪는 날카로운 소리가 골목 끝까지 쩌렁쩌렁 울리고, 오토바이 시동음과 가게 주인들이 제각각 내지르는 말들까지 한데 뒤섞이며 이 골목만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그러나 새벽 골목길 철문들은 기름때가 눌어붙은 무거운 입을 꾹 다문다. 그토록 요란하던 공기도 새벽이 오면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진공상태처럼 잠잠해진다.

이 시간, 잠에 빠진 골목의 깊은 품속 어딘가에서 작은 소음이 퍼져 나왔다. 바람이 슥 훑고 지나갈 때에 맞춰 귀를 잘 기울여야만 겨우 들을 수 있을 듯한, 낮게 울리는 금속음. 허공 위로 부딪치고 사라지는, 짧고 건조한 떨림. 그리고 다시 침묵.

소란을 만들어 낸 이는 골목의 이쪽 어둠에서 저쪽 어둠으로 재빨리 숨어들었다. 그는 이 시간을 알고 있었다. 시선이 없는 시간. 소리가 묻히는 시간. 그리고 범행이 늦게 드러나는 시간.

그는 오래전부터 이 골목의 새벽을 공부해왔다. 어느 골목이 가장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지, 어느 가게 주인이 가장 일찍 출근하는지, 순찰차가 동네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지. 모든 것을 파악했다. 아니, 그냥 오래 해왔을 뿐인지도 몰랐다. 무수한 반복은 감각을 길렀고, 감각은 도시의 습관을 꿰뚫어 보는 눈이 되었다. 그는 이 골목의 작은 빈틈까지 포착해 낼 수 있었다.

첫 번째 가게.

‘툭, 드르륵.’
무심하게 자물쇠를 자르고, 셔터를 올린다. 몸이 들어갈 정도로 틈이 벌어지면 뚜벅뚜벅 들어가 서랍을 뒤집고, 금고를 확인한다. 돈이 있으면 가져간다. 없으면? 미련 없이 돌아 나온다.

두 번째 가게.

같은 구조, 같은 과정, 그리고 같은 결과. 챙겨 나올 것이 없는 가게는 마치 벌을 주듯, 물병 하나를 꺼내 마신 후 남은 물을 바닥에 내던지고 나온다. 담배를 피울 때도 있다.

세 번째.

힘이 빠지긴커녕, 몸놀림은 갈수록 빨라졌다. 호흡은 일정했다. 이 일은 더 이상 하루의 일탈이나 위험한 도박이 아니었다. 그저 익숙하고 반복적인 작업일 뿐이었다.

한 번 나타나면 최소 가게 3곳 이상이 털렸다. 이날 밤까지 27곳째. 여러 곳이 동시에 털린 밤이 지나면 최소 1건 이상, 석 달간 총 8건 이상의 신고가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8번 모두 놓쳤다.

코앞이었다. 오토바이 골목에서 가장 가까운 대구중부경찰서 달성지구대(현 서문지구대)까지 불과 300m. 중부경찰서장은 “순찰이 없는 쉬는 시간에도 골목에 경찰차를 대고 대기하라”고 지시까지 했다. 경찰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골목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놈은 경찰을 비웃듯 미로 같은 골목을 쥐처럼 파헤쳤다. 아직 폐쇄회로(CC)TV가 곳곳에 있진 않던 시절이지만, 이렇게 경찰이 눈 뜨고 8번이나 당한 건 이례적이었다. 가히 ‘골목왕’이었다.

언제까지 계속될까. 골목왕의 9번째 ‘새벽털이’는 언제일까. 28번째 희생양은 어디일까. 범행과 신고는 어느새 두 자릿수를 넘보기 직전. 오토바이 골목 상인들에게 새벽은 쉼이 아닌, 공포와 동의어였다.

2006년 7월 27일 0시 30분, 28번째 사건 발생 직전.
골목의 어둠 사이에서 경찰차 한 대가 빛을 뿜으며 나타났다. 서서히 골목 사이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던 차는 잠시 후 끼익 멈춰 섰다.
조수석에 앉은 달성지구대 모준영 순경은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스물아홉, 경찰 생활 3년 차.

그는 원래 이런 밤을 좋아했다. 도시가 잠든 시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불완전하지만 아직은 깨어지지는 않은 평온의 시간. 차 유리창 너머로 아스팔트 위를 길게 물들인 가로등 불빛이 보였다. 낮에는 복잡하고 지저분하게만 보이던 골목. 하지만 새벽에는 묘하게 단정해 보이기도 하는 곳.

하지만 모 순경의 감상은 단 몇 초 만에 끝났다. 생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요즈음의 골목은 평소완 달랐다. 범죄의 그림자가 고요함을 집어삼킨 때였다.

“오늘도 털리려나.”
운전석의 이영민 경장이 중얼거렸다. 허탈하게 웃으면서. 농담 같았지만,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모 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벌써 석 달째였다. 이 골목에서,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스물일곱 번.
골목왕은 새벽에 나타나 셔터를 들어 올리고, 돈이나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싹 쓸어갔다. 아침에 출근한 상인이 발견해 급히 신고했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지 최소 네 시간은 지난 뒤였다.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없었다. 유일한 희망인 현장에 남은 지문마저 불완전했다.

수사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서장실에서는 매일 고함이 터져 나왔고, 상인들의 민원은 쌓여갔다. 지구대 소속 경찰들은 그 혼란 어느 한 틈바구니에 끼어 고통받고 있었다.

범인은 새벽에 나타나 작업을 마치곤 바람처럼 사라졌다. 해가 떠오르고, 털린 가게를 발견한 상인들은 지구대로 뛰어들어와 고함을 쳤다. 상인들의 항의 방문으로 주간 근무를 시작하는 날이 반복됐다. 팀장은 매일 신경질을 냈고,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잔뜩 들어찬 지구대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모 순경도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다시 밤. 두 사람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또 한번 문제의 골목에 왔다. 여느 때처럼, 순찰을 돌기 위해. 그런데 그 순간, 멀리 골목 끝 어둠에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에서 멈췄다.

“어?”

먼저 반응한 건 이 경장이었다.

0시 30분. 인적이 끊긴 지 한참 됐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170㎝ 정도 되는 왜소한 체구. 모자를 푹 눌러 써 어둠에 가려진 얼굴.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니듯 아래로 축 처진 어깨엔 같은 모양으로 축 처진 묵직한 가방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걸음은 느긋하고 산뜻했다. 마치 이 시간에, 이 골목을, 이렇게 걷는 것이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취미 생활이자 소일거리라도 된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쟨 뭐꼬.”
이 경장이 말했다.
“확인 함 해봅시더.”
“가서 뭐라 할 낀데? 대뜸 ‘니가 범인이가’ 카면서 물어볼라꼬?”

“딱 하나만 확인하면 될낍니다.”

모 순경이 자신 있게 말했다.

남자와의 거리가 좁혀지며, 경찰차도 속도를 줄였다. 회전을 멈춘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스치는 낮은 소리가 골목에 퍼졌다. 남자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봤다. 모 순경은 차에서 내려 남자를 불러 세웠다.

“저기 아저씨, 잠시만예.”
남자의 발걸음이 멈췄다. 여전히 얼굴은 모자의 어둠 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모 순경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시선이 남자의 얼굴을 지나쳐 바닥을 향했다.

“발목 좀 볼 수 있겠심미꺼.”


[구독하기] 내용을 더 보시려면 아래 URL을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넣으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3671?utm_source=bmp&utm_medium=art&utm_campaign=260428
이 기사는 중앙일보의 프리미엄 유료 구독 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 전용 콘텐트입니다. 월 4,900원으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무제한으로 경험해 보세요.





곽주영([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