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외과 의사들은 우리끼리 서로 ‘미친 사람들’이라고 해요. 대학병원에서도 연간 적자가 100억원에 달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구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에서 만난 허준(56) 병원장이 중증화상 분야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1971년 문을 연 이후 올해 55년째를 맞이한 이 병원은 국내에 하나뿐인 화상 전문 대학병원이다. 허 병원장은 “화상 의료 자체가 애초부터 특별한 분야인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다 보니 특별한 사람들이 됐다”며 “그만큼 중증화상 분야는 경제적인 보상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의 뜻이 모여 간신히 유지돼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상 병원이지만 수십 년째 만년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화상 치료를 위해선 각종 감염 방지 시설 등 여러 설비를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드레싱을 비롯한 주기적인 상처 관리에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 같은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에 비해 화상 의료 수가가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화상 환자의 대학병원 평균 재원일수(21일)가 일반 대학병원 환자 평균(5일)의 4배에 달할 정도로 중증화상은 치료 기간도 길다. 허 병원장은 “그간 영업적자를 많이 줄였지만, 아직도 수십억대의 구조적인 적자를 내고 있다”며 “가장 큰 화상 병원이라고 해도, 화상 의료 자체가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진 구하는 것도 어려울뿐더러 의료 정책적인 관심도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에서 화상 재활 환자가 로봇치료를 하는 모습. 사진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허 병원장은 주거·근무 환경이 열악한 취약 계층이 화상 사고에 더 많이 노출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화상은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나는 사고”라며 “중증화상은 노후한 주거 환경에 노출된 저소득층이나 고온·불씨 등 화상 위험이 높은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들에게서 더 자주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화상 치료를 받은 환자 220만4417명 가운데 중증화상 환자는 2462명이었다. 전국에서 중증 화상을 입는 환자가 하루에 6.7명씩 발생하는 수준이다.
화상이 심할수록 치료비 부담도 급격하게 커진다. 건강보험공단이 집계한 중증화상 환자 1인당 진료비는 2024년 기준 1480만원이지만, 이는 비급여 항목이 포함되지 않은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한다. 허 병원장은 “화상 치료 비용의 대부분은 중환자실 입원비, 피부 이식, 성형 수술 등 비급여 항목이 차지하기 때문에 취약계층은 경제적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며 “광범위한 피부 결손이 발생한 환자는 자기 피부가 모자라기 때문에 배양 피부를 사용해야 하는데, 치료비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산업재해 급여가 나오는 일부 환자만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허준(56)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장이 화상 환자를 수술하는 모습. 사진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치료 이후에도 화상의 흔적은 깊게 남는다. 허 병원장은 “예전 환자 중에 화상으로 항문까지 손상돼 배변 장애가 생겼을 만큼 피해가 심한 초등학생이 있었다”며 “힘든 치료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을 정도로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퇴원 후 몇 달 뒤 병원 정신과에 입원해 다시 만나게 됐다. 외모 변화 등으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을 겪게 된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선 화상 경험자의 13~23%가 우울장애를, 13~45%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것으로 보고된다”며 “해외 연구에서도 화상 경험자 3명 중 1명이 사고 이후 어떤 형태의 직업으로도 복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환자의 평생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증 화상 분야에선 사회적 연대가 중요하다고 허 병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공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의료계와 민간 기업, 시민 사회 등이 사회적 연대를 이뤄 중증 화상 치료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대학 시절에 뵀던 분들 중 화장품 브랜드 ‘닥터지’를 창업한 안건영 대표가 있는데, 그는 어린 시절 화상을 겪은 경험을 계기로 피부과 전문의 된 이후 지금까지도 회사를 통해 지속해서 화상 지원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했다.
허 병원장은 “선대 이사장인 고(故) 윤대원 박사님은 오래전 ‘화상센터는 적자를 보더라도 공공성을 위해 반드시 운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현장에서 매일 환자를 만나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화상 환자의 삶을 생각하는 사회의 많은 사람의 뜻이 모여 조금씩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