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양의 육수를 나누어 부으며 황태를 괴롭히듯 볶아보세요. 사골 국물처럼 뽀얗고 진한 진액이 우러나올 겁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간 이래 가온으로 7년(2017~2023년) 연속 3스타를 지켜내며 한국 미식의 정점을 기록한 김병진 셰프. 사소해 보이지만 재료의 본질을 꿰뚫는 이러한 조언들은 20여 년간 셰프의 길을 걸어온 그만의 정교한 문법에서 나온다. 그는 “한식은 인위적으로 치장하기보다 수수함 속에 감춰진 고유의 맛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하며, 정형화된 레시피에 갇히기보다 식재료가 가진 생명력과 계절의 변화를 중심에 두고 요리를 풀어낸다.
7년 연속 미쉐린 3스타를 받은 가온을 이끈 김병진 가온소사이어티 부사장은 “한식을 어렵게 생각하기보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말한다. 사진 지글지글클럽
정상의 자리에 있음에도 그는 스스로를 “집에서는 평범한 남편”이라 말한다. 매년 아내의 생일이면 미역국과 불고기, 갈치구이를 준비해 상을 차리는 그에게 요리는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이제 파인 다이닝의 문턱을 넘어 일상의 부엌으로 확장되고 있다. 제철의 기운을 담은 한식 노하우를 누구나 쉽게 체득할 수 있도록 온라인 쿠킹클래스에 참여하며 대중과 소통을 시작한 것이다. 그를 만나 한식의 깊은 맛을 결정짓는 디테일과 재료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물었다.
Q : ‘한식의 매력’은 무엇인가?
현대의 음식들은 자극적인 맛을 더하거나 화려하게 치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식의 진정한 매력은 수수함 속에 감춰진 고유의 맛, 그 순수한 미(美)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위적으로 맛을 입히기보다 재료가 가진 본연의 힘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한식의 정수다.
7년간 미쉐린 3스탈르 유지하며 한식 다인이을 이끈 가온의 전복찜. 사진 가온
Q : 한식을 어렵게 느끼는 이들에게 평소 강조하는 점이 있다면?
한식은 쉽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먹고 있는 음식을 어떻게 조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그 작은 고민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단맛은 조청이나 배즙으로 내고, 육수를 여러 번 나눠 부어 깊은 감칠맛을 내는 식의 실용적인 팁만 익혀도 한식의 문턱이 훨씬 낮아질 것이다.
Q : 클래스에서 돼지고기 요리를 만들며 새우젓을 활용했는데, 그 이유는?
김병진 셰프가 지글지글클럽의 온라인 요리학교 '요리를 배워요'에서 소개하는 등갈비 새우젓 찜구이. 사진 지글지글클럽
새우젓은 단순한 간이 아니라 훌륭한 연육제다. 새우젓 속의 소화 효소인 디아스타아제는 고기 단백질을 분해해 식감을 아주 부드럽게 만든다. 특히 돼지 기름과 만나면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가 극대화된다. 고기를 다룰 때 핏물을 빼느라 오래 담가두기보다, 깨끗한 물에 세척한 뒤 물기를 잘 닦아내는 것이 육향을 보존하는 비결이다.
Q : 국물 요리의 맛은 육수가 좌우하는데?
육수용 무는 아래쪽 흰 부분을 쓰는 게 좋다. 윗부분은 당분이 많아 생채에 어울리고, 아리고 쓴맛이 있는 아래쪽이 국물 맛을 시원하게 잡아준다. 육수를 끓일 때는 약불이 중요하다. 팔팔 끓기 시작할 때 불을 줄여 20분 정도 은근하게 우려야 멸치의 비린 맛을 방지하고 감칠맛을 온전히 용출시킬 수 있다.
Q : 불고기 등 고기 양념을 할 때 나만의 ‘맛간장’ 비법이 있다면?
간장에 미림, 조청, 배, 양파 등을 넣고 끓여 만드는데, 이때 채소를 불에 구워서 사용해보라. 구운 채소 특유의 풍미와 배의 단맛이 어우러져 자극적이지 않은 깊은 맛이 난다. 고기를 양념에 재우기 전 배즙에 미리 재워두면 잡내를 잡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Q : 장아찌를 담그는 계절, 봄이다. 장아찌를 담글 때 간장을 식혀 붓는지, 뜨거울 때 붓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 맛의 차이는 없다. 언제 먹느냐의 차이다. 뜨겁게 부으면 빨리 먹을 수 있고, 식혀 부으면 오래 두고 먹기 좋다. 다만 오래 보관하려면 3일 정도 지났을 때 간장만 따로 빼서 다시 끓인 후 식혀 부어줘야 한다. 채소에서 수분이 나와 염도가 낮아지는 것을 막아 보관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김병진 셰프는 지글지글클럽 ‘요리를 배워요–한식의 정석’에서 황탯국과 미역국 같은 밥상에 꼭 오르는 국물 요리부터, 등갈비찜구이와 소고기, 참돔솥밥, 겉절이까지 아우르며 일상은 물론 특별한 날에도 활용할 수 있는 한식 차림의 방법을 제안한다. 사진 지글지글클럽
Q : 마지막으로, 한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은?
대파를 쓸 때 초록 부분은 진액이 있어 쓴맛이 날 수 있으니 김치나 겉절이에는 하얀 연백부를 주로 사용해보라. 또 겉절이 양념에 고추장을 약간 섞으면 재료에 양념이 겉돌지 않고 잘 달라붙는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이 모여 맛의 차이를 만든다.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따뜻한 밥 한 끼가 주는 위로를 여러분도 일상에서 직접 느껴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