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평화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북한인가, 조선인가'를 주제로 열린 2026 한국정치학회 특별학술회의에서 사회를 맡은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가 북한을 정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칭인 ‘조선’으로 호칭하기 위한 공론화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29일 통일부가 후원한 관련 학술회의에서는 조선 호칭 사용이 상호 주권을 존중하는 기존 남북 간 합의를 계승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이 다수 나왔다.
한국정치학회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평화공존을 위한 이름 부르기: ‘북한인가 조선인가’’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통일부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남북관계 대신 ‘한조관계’로 표현하며 논란이 된 ‘조선’ 호칭 사용에 대해 학술적 분석과 정책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는 게 정치학회 측의 설명이다.
‘평화공존을 위한 북한(조선) 공식 국호 사용 제언’을 주제로 발표한 김성경 서강대 교수는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통일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라면서 “우리가 ‘조선’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북한에 상호 존중, 현실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의 틀을 모색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호명 하나를 바꾸는 것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만 “공식 국호의 전면적·즉각적 도입보다는 맥락과 층위를 고려한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이라면서 “법적 조치나 정책 결정이기 이전에 담론적·문화적 실천의 변화이기 때문에 학계와 시민사회의 공론화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라는 제언도 내놨다.
이와 관련, 김남중 통일부 차관은 이날 축사에서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언어와 제도가 뒷받침될 때 대결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평화적 공존의 공간을 넓혀갈 수 있다”라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대를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이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로 인식하는 자세”라고 말했다.
법·제도적 검토를 중심으로 발표한 권은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정부가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고 호칭한다고 해서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거나 외교관계 수립이 자동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라면서 “국호 사용은 표기·식별·문서 기술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3조와의 충돌 우려에 대해서도 “영토조항은 평화통일이 실현된 상태인 통일한국의 영역 범위를 의미하는 선언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학술회의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통일부가 사실상 명칭 변경을 위한 정지 작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날 학술회의의 발표와 토론 자체가 북한을 ‘조선’으로 호칭하는 것을 전제로 이뤄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북한학 전문가는 “정동영 장관의 문제 제기에 논리를 보태주기 위해 공론의 장을 만들어 준 것에 불과할 수 있다”며 “진영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 내에서 ‘조선’이라는 용어가 주는 거부감이 상당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 장관은 지난달 25일 ‘적대의 종식과 한반도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열린 통일부·통일연구원 공동학술회의에서 ‘한조관계’라는 표현을 공식 석상에서 처음 사용했다. 지난 1월 통일부 시무식에서는 “이재명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를 존중하며 북측이 말하는 도이췰란드(독일)식 체제 통일을 배제한다”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국호를 사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