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결국 죽을 것이다. 내 무덤 앞에 묘비라도 세워진다면, 묘비에 새길만 한 문구가 무엇일지 가끔 생각한다. 이때마다 시인 찰스 부코스키의 묘비에 새겨진 간결한 문구가 새삼 경탄으로 다가온다.
부코스키는 술주정뱅이 떠돌이로 세상을 살았다. 끝없이 술을 마셔댔지만 그의 타자기도 멈추지 않았다. 부코스키는 수천 편이 넘는 시를 남겼다. 수백편의 단편 소설을 집필한 것도 부족해 6권의 장편소설까지 써냈으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냈다. 마침내 1986년 6월 16일자 타임지는 그를 미국 하류층의 계관시인이라 추켜세웠다. 그로써 한때의 ‘언더그라운드의 술주정뱅이’가 작가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인정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른 것일까?
끊임없이 마시고 썼던 부코스키
경탄 자아내는 그의 짧은 묘비명
출세에 눈 먼 세태에 대한 조롱
김지윤 기자
1963년, 낮에는 우체국에서 일을 하며 밤에 술을 마시며 글을 쓰던 부코스키는 ‘후즈 후 인 아메리카’ 편집자로부터 인생 철학이나 좌우명을 묻는 질문을 받고 딱 두 단어를 적어 보냈다. “Don’t Try(애쓰지 말라).” 그는 사회적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지는 않았지만 삶 자체가 문학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는 ‘계관시인’이 되려고 용쓰지 않았다. 글이 내부에서 쏟아져 나올 정도로 노력할 때 글이 쏟아져 나왔고, 그렇게 쏟아져 나온 글은 그를 애쓰지 않았는데도 ‘계관시인’이 되게 했다. 그는 1963년에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애쓰지 않는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캐딜락을 위해서든, 창조를 위해서든, 불멸을 위해서든 애쓰지 않는다. 기다린다….” 그는 노력했지만 애쓰지 않으면서 기다렸다. 자기에게 걸맞은 자리가 자신을 찾아서 움직일 때까지. 그는 그 자리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위해 문학을 위한 시간을 탕진하지 않았다.
1994년 3월 9일, 부코스키는 백혈병으로 73세에 사망했다. 로스앤젤레스 남쪽, 산 페드로 언덕 위의 그린 힐스 메모리얼 파크에 그의 묘지가 있다. 그 묘지의 청동 명판에는 이름과 생몰 연도, 그리고 그가 살아내면서 견지했던 삶의 철학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애쓰지 마라” 바로 그 문장이 새겨져 있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완벽한 묘비에 새겨진 문구이다.
누구에게나 오르고 싶어하는 자리가 있다. 그런 꿈도 없다면 세상을 어찌 살아내겠는가. 그 자리에 결국 앉는 사람은 두 종류이다. 어떤 사람은 애쓰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적합한 경지에 올랐기에 그 자리에 앉게 된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자리가 요구하는 자격과 식견을 갖췄는지 자문하지 않은 채 그저 그 자리가 탐나 기를 쓰고 그 자리에 앉고 싶어한다. 전자의 사람에겐 우린 아낌없는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후자인데 감히 박수까지 바란다면 그 자리에 오르려 애쓴 나머지 사리분별 능력까지 상실한 매우 심각한 정신상태라 봐야 한다.
출세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출세를 할 만한 자질을 갖추었고 전문성이 남다르다면 흔히 말하는 출세한 자리에 앉아도 된다. 그건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그 사람이 앉은 그 자리는 그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그 자리에 앉기 위해 아부와 애걸복걸과 때로는 술수까지 쓴 사람이 기어이 오른 그 자리는 그 사람과 겉돈다.
노력하며 기다리고, 그 결실로 자리에 앉게 되는 경우는 희박해지고, 애쓰는 인간이 자리를 차지하는 세상이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에게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을 기회가 생기면 그는 사양할 줄 모른다. 덥석 그 자리에 앉는다. 그 자리에 그렇게 앉은 악취 나는 욕망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 참 힘들게 산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부코스키의 “애쓰지 마라”는 포기하라는 권유가 아니라, 애쓰지 않으면서도 노력하는 방법을 터득하라는 말이다. “애쓰지 마라”는 말은 다른 이에게 돌아가야 하는 자리를 욕심으로, 인맥으로, 억지로 차지하는 불쌍한 인생에 대한 조롱의 말이다. “애쓰지 마라”는 자리를 탐하기 전에 자신이 아니라 그 자리가 자신을 요구하는지 제대로 물어보라는 마지막 충고이다. 자기 것이 아닌 자리를 향한 과잉 노력으로 설쳐대는 사람은 주변 모두를 힘들게 한다. 애쓴 자가 또 하나의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얻었다는 소식을 접한 골목길 책방에서 결심한다. 애쓰지 않겠다고. 곱게 늙을 나이가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