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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의 읽는 클래식 듣는 문학] 트럭 운전수 라벨과 왼손 피아노 협주곡

중앙일보

2026.04.30 08:02 2026.04.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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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1915년 봄 라벨(사진)은 독일군의 침공에 맞서기 위해 포병부대에 자원입대했다. 군은 현명하게도 그를 포격수 대신 트럭 운전병으로 배치했다. 허약 체질에 키가 작은 그가 어떻게 포탄을 나르고 박격포를 가동시키겠는가. 또 만일 그랬다면 그 청력 손실은 어찌할 것인가! 그럼에도 그 자그마한 트럭 운전사는 나름대로 상당히 위험하고 상당히 중요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가 복무했던 베르됭 지역이 격전지였기 때문이었다.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길을 뚫고 보급품을 수송하다가, 라벨이 ‘아델라이드’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트럭이 폭탄 파편을 맞아, 열흘간 구조를 기다려야 했다.

라벨이 아직 전장에 있을 즈음, 포괄적 의미에서 그의 적군이었던 한 오스트리아의 상이군인이 전쟁 전 그의 본업을 재개했다. 파울 비트겐슈타인, 그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친형이다. 세계 대전 초기에 입은 부상으로 오른팔을 절단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다시 무대에 서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그런 용기가 많은 예술가와 청중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힌데미트·코른골트·슈트라우스·프로코피예프·브리튼 등이 그를 위한 ‘왼손 작품’들을 썼다. 라벨도 1929년 빈을 방문했다가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만났고 그를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썼다. 이 작품은 모든 왼손 작품들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다.

참전 용사 라벨에게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적군이 아니었다. 팔을 잃었으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잃어버리지 않은 존경스러운 음악가 동지였다. ‘프랑스 음악 옹호를 위한 국가 연맹’이 적국 독일·오스트리아 작곡가의 음악 공연을 금지하려 했을 때도 라벨은 반대했다. 음악에 대한 찬반을 법령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폭력적이기 때문이었다. 고통받는 인간에게 공감하라. 정직한 예술가 라벨은 그저 휴머니즘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음악 예술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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