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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의 마켓 나우] 집단소송제, 시장을 바꾼다

중앙일보

2026.04.30 08:04 2026.04.3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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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훈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KAIST 겸직 교수

심재훈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KAIST 겸직 교수

지난주 언론이 집중 보도한 법률 이슈가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민사소송법 개정안, 그중에서도 집단소송제의 전면 도입이다. 논쟁은 뜨겁지만, 초점은 다소 어긋나 있다. 법조계의 찬반이나 제도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시장에 어떤 신호를 보내느냐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중 일부가 전체를 대표해 소송을 내고, 승소하면 나머지 피해자도 별도 소송 없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2005년 증권 분야에 한해 이를 도입했지만, 활용은 미미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등 반복된 집단 피해는 제도의 확장을 요구했고, 이제 입법이 현실화 단계에 이르렀다.

이 제도의 진짜 의미는 법정이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 테이블에 있다. 집단소송제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제품 안전과 품질 관리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게 된다. 이는 도덕적 각성이 아니라 계산의 변화 때문이다. 위법 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소송에서 부담할 비용이 더 커지는 순간, 법 준수는 선택이 아니라 합리적 귀결이 된다.

이 변화는 개별 기업을 넘어 시장 전체의 경쟁 질서를 재편한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법을 어기는 기업은 더는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집단소송은 이들을 처벌하는 동시에 법을 지키는 기업이 불리해지는 구조적 역설을 바로잡는다. ‘공정한 경쟁의 장’은 규제 당국의 선언이 아니라 이런 비용 구조의 재설계에서 나온다.

소비자 측면에서도 효과는 크다. 집단소송 판결이 축적되면 피해가 실제로 보상된다는 신뢰가 시장 전반에 형성된다. 이 신뢰는 단순한 심리적 요소가 아니다.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이며, 내수 경제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가 된다.

더 나아가 집단소송제는 정부 규제의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다. 공무원과 예산에 필연적인 제약이 있기 마련인 상황에서 집단소송은 민간 변호사와 피해자를 ‘사적 집행자’로 끌어들인다. 국가가 직접 감시하지 않아도 시장 내부에서 법 준수가 유도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소송 남발, 기업 비용 증가, 혁신 위축에 대한 우려다. 그러나 이는 제도의 설계로 관리할 문제이지 제도의 필요성을 부정할 근거는 되기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현재와 같은 ‘위법의 이익이 더 큰 구조’를 그대로 둘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결국 핵심은 단순하다. 법이 바뀌면 시장의 인센티브가 바뀌고, 인센티브가 바뀌면 기업의 행동이 바뀐다. 집단소송제는 처벌을 강화하는 제도가 아니라, 불법의 경제적 이득을 제거하는 장치다. 또한 소송이 많은 시장이 아니라 소송이 필요 없는 시장을 지향한다.

심재훈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KAIST 겸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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