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미국-이란 전쟁이 발발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호르무즈해협이 물리적으로 봉쇄됐다. 유전과 가스전까지 공격하고 대량 인명 살상이 이어지는 잔혹한 전쟁이 휴전과 개전을 반복하며 두 달이나 지속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이 급감하고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 세계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에너지 93% 수입하는 경제 구조
유가 뛰면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해외 자원에 대한 소유권 늘리고
원전 늘려 안정적 전력 확보해야
국가 존망 좌우하는 에너지 안보
정책 컨트롤 타워 통해 대비해야
김주원 기자
세계 석유 하루 사용량의 20%, 액화천연가스(LNG) 사용량의 25%가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해서 전 세계로 공급된다. 이스라엘이 이란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을 공습하고 이란은 카타르 가스전인 라스라판을 공격했다. 그 결과 걸프 지역 전체 원유 수출량이 일일 2500만 배럴에서 약 1000만 배럴로 급감하며 57%가량 사라졌다. 1970년대 1차 석유 파동 때는 하루 사용량의 7.5%, 2차 석유 파동 때는 9%가 감소했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하루 사용량의 약 10%에 해당하는 물량이 호르무즈에 묶여버렸다.
김주원 기자
전기 요금 결정하는 천연가스 가격 공급이 줄며 두바이유는 배럴당 70달러에서 170달러까지 치솟았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26달러를 기록했다. 천연가스 동북아 현물가격 지수인 JKM은 2배 넘게 올랐다. 미증유의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며 에너지 안보를 재설계해야 할 시점임을 시사한다.
대한민국은 사용 에너지의 93%를 해외에서 사 온다. 이중 원유 70.7%, LNG 20.4%가 호르무즈해협을 지난다. 국내 정유사는 중동산 중질유를 수입해서 휘발유와 경유, 아스팔트, 윤활유 등 석유 제품을 만들고, 나프타를 가공해서 플라스틱 제품 등 일상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해 국내 소비와 수출을 담당한다.
원유 가격 상승은 석유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생필품과 운송비도 오르게 된다. 더 나아가 비료 가격에도 영향을 미쳐 식량 가격을 올리고 서비스와 인건비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전반적인 소비자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며 일상생활 전반이 취약해지는 결과를 낳는다. 원유 부족도 문제지만 정제 시설이 없는 나라의 어려움은 더 크다. 우리는 국내에 정유사가 있는 덕에 다른 나라처럼 할당제나 배급제를 하지는 않지만 유럽은 항공유 폭등으로 항공 운항편을 1000편씩 취소하고 있고, 호주는 정제 시설이 없어서 한국에서 휘발유와 경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다.
유가가 오르면 국내 도입 천연가스 가격은 4개월가량 뒤에 영향을 받는다. 그런 만큼 여름 전기요금이 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전쟁이 길어지면 겨울 난방 가격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호주와 말레이시아, 카타르, 미국 등에서 전량을 수입하는 천연가스는 발전과 난방을 위한 필수 자원이다. 지난해 국내 전력 생산의 30%를 천연가스가 담당했다.
발전 비중보다 천연가스 가격의 흐름이 중요한 것은 천연가스 발전이 전력 도매 한계가격(SMP)을 대부분 결정하기 때문이다. 저렴한 원자력과 석탄 순으로 발전하고 전력 수요가 늘어날 때 추가로 필요한 발전 용량(첨두부하)은 천연가스 발전으로 이뤄지는 만큼 전기요금 결정에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광물과 희토류 안보 전략도 필요 달라진 전쟁 양상은 넓어진 에너지 자원의 범위와 커지는 전력 안보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군사 시설이나 핵 시설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시설이나 기간 시설을 공격해 상대국의 에너지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생명줄을 끊으려고 한다. 발전소와 변전소 등 전력 시설도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동원되며 값싼 드론을 이용한 정밀 타격이 가능해지자 상대방의 데이터센터를 공격해서 AI를 이용한 공격을 무력화할 필요성도 커지게 됐다. AI가 안보의 핵심 자산이며 발전 시설과 데이터센터가 중요해지고 있다.
중동 전쟁이 가져오는 교훈은 명백하다. 단일 에너지원이나 단일 수송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곧 국가 안보의 구멍이다. 그런 만큼 우선 다양한 에너지원과 다각화된 공급망 확보가 필요하다.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최종 소비로 보면 열에너지 50%, 수송에너지 30%로 전기에너지는 고작 20%에 불과하다. 즉 석유와 천연가스 및 석유 제품 등의 전통 에너지 자원이 여전히 필요하고 더 나아가 광물과 희토류 안보까지도 생각해야 한다.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액체 연료인 디젤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전쟁 시에는 항공유로 모든 전투 연료를 준비한다.
일상적인 에너지 안보나 위기 상황 대비를 위해서도 적절한 석유 제품과 석유화학 제품을 항상 공급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에너지원을 다양한 루트로 공급받을 수 있는 상사 기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한다. 상사가 전 세계를 누비면서 에너지원을 확보한 일본은 올해 말까지 걱정이 없는 상태다.
둘째로 해외 자원 개발에 대한 재인식과 지분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공급선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원의 상류 부문에 직접 들어가야 한다. 해외 유전과 가스전에 직접 투자하고 지분 물량을 확보하면, 웃돈을 주고도 자원을 살 수 없는 시기에 대응 능력이 달라진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 LNG 수출 터미널과 파이프라인에 대한 지분 참여는 에너지 안보와 LNG 운반선 수주를 동시에 잡는 전략이다.
가스공사가 LNG 캐나다 프로젝트를 통해 지분을 확보한 덕에 가격을 불문하고 물량을 확보할 수 있었고 현재 그 물량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자원 개발과 해외 지분 비중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늘려야 한다. 우리가 소유한 자원으로 에너지 안보를 대비하고 공급망 위기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전력 기자재 국산화, 에너지 안보 과제 문제는 해외 자원 개발을 ‘적폐’로 몰았던 트라우마다. 공기업과 민간 모두 투자를 기피하면서 관련 생태계 자체가 무너졌다. 자원 개발은 수십 년을 내다보는 장기 투자다. ‘성공이냐 실패냐’라는 이분법으로 자원 개발을 정쟁의 도구로 만드는 악순환을 끊지 못하면, 위기 때마다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자주개발률(정부나 민간 기업이 국내외에서 직접 개발·확보한 석유·가스 생산량을 국내 소비량으로 나눈 비율)은 거의 50%에 육박한다. 해외 자원에 대한 자기 소유권이 막대하다는 뜻으로 이번 위기처럼 어려울 때 효자 노릇을 하게 된다.
셋째로 전력 안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정립해야 한다. 미래의 중요한 에너지 전략 방안은 전기화다. 국내에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전력 생산할 수 있는 자원은 원자력 발전이다. 원전은 국내 전력 생산의 31%를 담당하는 최대 무탄소 에너지원이다. 간헐적인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상황에도 안정적인 24시간 기저 전력을 생산해 줄 유일한 안보 자산이다. 정부는 가동률을 8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정비 중이던 원전 재가동도 앞당겼다.
이를 위해서 핵연료 자립을 위한 농축 시설부터 재처리까지 전 과정에 대한 국내 밸류 체인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국내 생산이 가능하지만 날씨 등의 변수가 큰 데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해도 안정적 전원이 될 수 없다. 에너지 안보의 대안이 되려면 중국산에서 벗어나 기자재 국산화와 함께 전력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송전망을 적기에 구축하고 ESS를 적절히 배치해 산업단지와 가정에 전력공급이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유럽 11개국과 송전망이 연결된 독일은 우리의 직접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른 나라에 전력망을 연결할 수 없는 독립계통의 한계를 극복할 한국형 모델이 필요하다.
전략 물자 공급망 분산 노력 나서야 마지막으로 전쟁 시에도 AI를 가동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AI 데이터센터가 분석한 자료로 전략을 세우고 타격 지점을 결정해 전투기를 띄우고 드론을 운영하는 체계로 전쟁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AI를 위한 반도체 공급망 자원 관리와 함께 전력 공급의 안정성이 보장돼야 한다. 새로운 전력 시스템은 AI를 통해서 비상시를 대비하고, 평상시에는 첨단 산업 육성과 피지컬 AI 및 소버린 AI에 필요한 충분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에너지 안보를 국가 존망과 생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를 경제 및 국방 안보를 아우르는 실질적인 국가 최고 목표로 설정하고 거버넌스 차원에서 산업·에너지·외교를 하나로 묶는 컨트롤 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범부처 ‘국가에너지안보위원회’ 상설화가 답이다. 이를 통해 외교 채널과 공급망 확보, 산업 보호, 전력 수급에 총체적이고 다면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원전과 LNG, 재생에너지, 광물 자원 등 모든 카드를 동원한 균형 잡힌 에너지 믹스를 추구해야 한다. 헬륨·나프타·요소 등 소수 국가에 집중된 전략 물자 공급망도 분산해야 한다. 공급선 다변화와 해외자원 지분 확보, 전력 안보의 재설정, 공급망 복원력 강화 등 새로운 에너지 안보의 체계와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이는 정권을 뛰어넘는 장기 전략이어야 한다. 미래 세대에 안정적인 경제 및 안보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확보에 국력을 쏟아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