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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도에도 재킷 챙겨라” 더위 속 등산, 뜻밖의 필수템

중앙일보

2026.05.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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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준 국립속초등산학교장이 봄철 등산의 계절을 맞아 지난달 29일 서울 대모산 인근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

민병준 국립속초등산학교장이 봄철 등산의 계절을 맞아 지난달 29일 서울 대모산 인근에서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

“산행 중엔 리듬을 타세요.”

산에서 춤추기라도 하란 얘기인가. 민병준(63) 국립속초등산학교장은 “맞다”고 했다. 그렇다면 상하좌우로 덩실덩실. “그런데, 지치지 않도록 작게요. 산행은 에너지 다루는 것도 중요해요.” 지난달 29일 민 교장을 서울 대모산 근처에서 만났다. 그는 국립등산학교가 있는 강원도 속초에서 설악산을 끼고 출발해 방태산·공작산을 스치고 천마산·아차산을 가까이하고 왔다.

봄. 가히 등산의 계절. 그런데 올봄은 더하다. 민 교장 눈에 들어온 아차산만 해도 그렇다. 수도권 전철 5호선 아차산역 이용객이 1년 새 22%나 늘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봄철 등산객 영향”으로 봤다. 민 교장의 출발지였던 설악산은 더 가파르다. 지난달 셋째 주말 1만8300명이 찾았다. 지난해 1만1500명에서 59% 급증했다. 북한산도 지난해보다 31%(6만3900명→8만3800명) 늘었다.

“인간의 자연 향유는 본능입니다. 이성적 방법으로 그 즐거움을 더할 수 있어요. 그게 바로 교육입니다.” 민 교장이 말한 ‘리듬과 에너지’ 외에 무엇이 있을까. 지난달 25일 북한산. 김성연(32)씨는 때 이른 더위에 반소매 차림으로 의상봉에 올랐다. 민 교장이 궁금해했다. “재킷은 챙겼던가요.”


Q : 그날 섭씨 27도까지 올라 꽤 더웠습니다. 그래도 재킷이 필요합니까.
A : “27도가 아니라 37도까지 올라도 재킷은 등산의 필수품입니다. 비바람을 막아줘야 하니까요. 그래야 체온이 유지됩니다. 체온이 한번 떨어지면 걷잡을 수 없이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마음의 천국이 될 산이 지옥이 되면 안 되죠.”

당시 의상봉 정상엔 평지에는 없던 바람이 초속 3m로 불고 있었다. 김씨의 얼굴에 후회의 표정이 스쳐 지나간 게 떠올랐다.


Q : 그러면 등산의 필수품은 무엇일까요.
A : “재킷 외에 등산화·물·랜턴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북한산에서 3시간 산행을 한다면 물은 시간당 0.5L 필요하고요. 바위가 많은 산이니 중등산화까지는 아니라도 접지력 좋은 경등산화에 한낮 산행이라도 비상시 길을 밝혀줄 랜턴이 필요합니다.”

랜턴? 지난겨울 기자는 북한산 하산 중에 “수능 끝난 기념으로 산에 처음 왔다”는 고등학생 두 명을 만났다. 등산화 아닌 운동화를 신은 둘 다 발목을 삐끗한 상태. 그들과 함께 내려오느라 30분 거리가 3시간이 됐다. 겨울 산에는 금세 암흑의 커튼이 드리워졌다. 마침 무게 나간답시고 챙길까 말까 했던 랜턴과 보온병이 내 배낭에 있었다. 그들은 뜨거운 커피믹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Q : 이런 일은 극히 드문 상황 아니었나요.
A :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등산도 ‘교육’이 중요합니다.”

국립등산학교는 산림청이 2018년 설립한 국내 최초의 국립 등산·트레킹 전문 교육기관이다. 민 교장은 이곳의 네 번째 수장. 낭가파르바트(8125m) 1997원정대, 백두대간 종주 등 전문 산행 경력만 45년이다. 그는 산행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백두대간 가는 길』 『아름다운 낭가파르바트』 『해설대동여지도』 등 책과 보고서 수십 편으로 남겼다. 등산 월간지 ‘사람과 산’ 등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국립등산학교는 지난해 경남 밀양에 한 곳을 추가했다. 충북 보은에도 설립 예정이다. 민 교장은 “전국적인 거점 교육 네트워크 확장”이라고 설명했다.


Q : 등산에 어떤 교육이 필요한가요.
A : “탈진하지 않으려면 50분 걷고 10분은 쉬어야 합니다. 또 저혈당에 빠지기 전에 초콜릿과 견과류 위주로 먹어야 해요. 목마른 건 이미 탈수 증세입니다. 목이 당장 안 마르더라도 물 한 모금 마셔야 합니다. 종이 지도도 갖고 다니는 게 좋습니다. 대부분 디지털 기기로 등산 지도를 보는데 방전되거나 기지국과 연결이 끊기면 어쩌죠? 배낭은 아래엔 가벼운 장비를, 위엔 무거운 걸 넣어 꾸려야 체감 무게가 줄어들어요. 우리 땅에 산이 존재하는 한 등산 안전 교육은 끊임없습니다. 시대 흐름과 세대 욕구에 맞춰 교육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설악산 등반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민병준 국립속초등산학교장. [사진 민병준]

설악산 등반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민병준 국립속초등산학교장. [사진 민병준]

그는 그러면서 “최근엔 공교육 활성화와 취약계층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학교에서 자유학기제와 고교학점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강원도 중고교생 200여 명이 와서 안전 교육과 스포츠클라이밍 체험, 설악산 십이선녀탕까지 산행을 함께했어요. 소풍도, 수학여행도 못 가는 아이들이 산이라는 거대한 교과서 앞에서 미소를 그치지 않더군요. 소문이 났는지 멀리 경북 안동에서도 온답니다. 학생들과 캠핑을 함께할 생각에 저도 설렙니다(웃음).”


Q : 올봄 산행 인구가 크게 늘었습니다.
A : “저도 감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만, 설악산 등산객이 60%나 늘었다니요. 그래서 기술과 안전 교육을 넘어 산에 대한 철학과 에티켓 교육도 시급합니다.”


Q : 철학과 에티켓이라면요.
A : “산은 수단이 아닙니다. 잠시 빌리는 겁니다. 무엇보다 흔적 남기지 않기(LNT·Leave No Trace). 하산자는 등산자 우선 배려하기가 작은 에티켓이죠. 세대 차이도 있긴 합니다. 레깅스 패션이 대표적인데 그것도 시대 흐름입니다. 개인적으론 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1980년대 청바지 위에 긴 양말 올려 신은 패션도 있었잖아요(웃음).”

‘산에서 리듬을 어떻게 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민 교장이 몸으로 보여줬다. “이렇게, 이렇게”라며. 오늘은 양복을 입고, 그는 정말 춤추는 것 같았다.





김홍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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