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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면 재정 부담, 풀면 가격 폭등…석유 최고가격제 ‘출구 딜레마’

중앙일보

2026.05.02 19:33 2026.05.0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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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풀면 가격이 뛴다. 정부가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 50일을 맞으며 ‘출구 딜레마’에 빠졌다. 제도를 유지하면 재정 부담과 업계 손실이 늘어나고, 종료하면 억눌린 가격이 한꺼번에 반영되며 물가 급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 손실 보상 기준을 둘러싼 정부와 정유업계 간 힘겨루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가 3월 13일 시작한 최고가격제가 이달 2일로 시행 50일째를 맞이했다.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재정 부담과 종료 후 가격 급등 우려 등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3월 13일 시작한 최고가격제가 이달 2일로 시행 50일째를 맞이했다.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재정 부담과 종료 후 가격 급등 우려 등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3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3월 13일 시작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단기적으로는 국내 유가 변동성을 줄이며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지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8%포인트 낮아진 것으로 추정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고가격제에 대해 “전쟁이 종료되거나 안정되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종료하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지만, 종료 시점을 잡기 쉽지 않다.

국제 유가도 출렁이고 있다. 브렌트유는 지난달 30일 장중 배럴당 126달러를 돌파하며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2일(현지시간)에는 108.17달러로 내려앉았다. 원유와 석유제품 재고 감소에 따른 가격 급등 우려도 커지고 있다. 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에너지애스펙츠의 암리타 센 창업자는 “전쟁이 6월 말까지 이어질 경우 재고가 고갈될 수 있다”며 “브렌트유가 배럴당 150~2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사태가 일단락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2차 최고가격 시행 후 누적된 인상 억제분은 L당 휘발유 125원, 경유 628원, 등유 573원 수준이다. 제도 종료 시 억눌린 가격이 한꺼번에 반영되며 단기간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 억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 해제가 부담스러운 이유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나흘째인 3월 16일 충북 오송의 한 자영 알뜰주유소에서 최고가격제 적용 유류를 싣고 온 탱크로리의 입하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7일 간담회에서 "상황이 안정되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제도를 종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나흘째인 3월 16일 충북 오송의 한 자영 알뜰주유소에서 최고가격제 적용 유류를 싣고 온 탱크로리의 입하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김 장관은 지난달 27일 간담회에서 "상황이 안정되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제도를 종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파키스탄에선 2022년 2~5월 휘발유 가격 등을 정부 고시가격으로 동결했는데, 정책 종료 후 휘발유 가격이 L당 149.9루피에서 248.7루피로 66% 급등했다. 보고서는 “제도 종료 시 억눌린 가격조정 재개에 따른 반등 폭 확대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제도 운용이 길어질수록 재정 부담은 커진다. 정부는 정유사 손실 보전을 위해 6개월 기준 4조2000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편성했지만,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 실제 손실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손실보상 기준을 놓고 정부와 정유사 간의 ‘샅바싸움’도 본격화됐다. 정부는 생산 원가 기준 보전을 원칙으로 하는 반면, 정유업계는 제품 가격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원유를 정제하면 LPGㆍ휘발유ㆍ등유ㆍ경유 등이 단일 공정에서 동시에 생산되는 이른바 '연산품(joint products)' 구조여서, 특정 제품만의 원가를 따로 떼어내는 것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유사의 논리대로 휘발유와 경유 등을 공급할 때 사용하는 기준 가격인 싱가포르 국제석유제품가격(MOPS)과 최고가격제로 낮아진 국내 공급가 간의 차이를 토대로 산정할 경우 손실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가격차와 판매량 등을 토대로 국내 주요 4개 정유사가 입은 손실이 이미 3조원에 육박한다는 추산도 나오고 있다.

다만 정부는 이런 업계 측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최고가격제 시작 전 원가 기준 보전 원칙을 고시한 데다, 정유사의 중동 전쟁으로 3배씩 뛴 MOPS를 반영해 손실을 산정하는 것은 합당한 기준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업체들이 각 품목별 원가를 산정하는 것도 시스템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동흠 회계사는 “연산품의 특징 사 유종별로 원가를 어떻게 산정ㆍ배분할지를 결정하는 게 관건”이라며 “정유사마다 재고자산 원가 결정방법도 달라 이런 점 등을 모두 고려하려면 실제 정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출구 전략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통계학부 교수는 “중동사태 장기화 가능성과 재정 부담 등을 감안해 화물ㆍ자영업자들이 주로 쓰는 경유는 유지하고, 휘발유에 한해서는 최고가격을 서서히 인상해 국제가격과 격차를 줄이거나 종료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며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바우처나 보조금 지급 등 선별적 지원으로 충격을 줄이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국제석유 가격과 최고가격 간의 차이가 좁혀지는 등 해제 조건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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