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에서 기자들에게 독일 주둔 미군 감축 규모가 당초 국방부가 제시한 규모보다 더 클 것이라고 밝혔다.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주독 미군 감축을 공식화하면서 ‘전략적 유연성’ 적용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동시에 호르무즈해협 통항과 관련해 ‘해양자유연합’(MFC) 구상 참여를 제안하며 동맹의 기여도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해외 주둔 미군 조정이 주한미군에 미칠 여파를 주시하는 동시에 호르무즈해협 관련 기여 수준을 고민하는 난제에 직면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에서 기자들에게 주독 미군 감축과 관련해 “5000명보다 훨씬 더 많이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숀 파넬 미 국방부(전쟁부) 대변인이 발표한 5000명보다 더 많은 인원 철수를 예고한 것이다.
동맹이 안보 책임을 더 지도록 하고, 미국은 주요 지역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취지의 전략적 유연성이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주한미군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미국이 대중 견제를 안보 우선순위로 두는 만큼 한반도 방위태세에 급격한 변화를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주독미군 감축 논리를 주한미군에 즉자적으로 대입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규모가 아니더라도 역할 변경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상당하다. 지난 1월 미 국방전략서(NDS)도 북한의 재래식 위협 대응은 한국이 주로 맡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는데, 주한미군의 성격을 대북 억지에서 대중 견제로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주독미군 감축은 중동 전쟁을 계기로 전략적 유연성 기조에 힘을 불어넣겠다는 신호탄”이라며 “주한미군 운용에 변화가 오고 한반도 방위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질 수 있다”라고 짚었다. 이와 관련 국방부 당국자는 “정부는 전세계 미군 전력태세 검토 및 변화 가능성에 유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이 각국 대사관을 통해 MFC 구상을 전달한 것도 정부의 고민을 키운다. 정부는 지난달 17일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련 정상회의에서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실질적 기여’ 의사를 밝혔다. 이후 “기여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는데,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체가 가시화할 경우 적극적 참여를 요구받을 수 있다.
미국의 동맹 참여 압박은 ‘이란 돈줄 옥죄기’에서도 명확해지고 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지난 1일(현지시간) “안전 통항을 위해 이란 정권에 자금을 지불하거나 (공격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요청하면 제재당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를 하려고 주의보를 발령한다”고 밝혔다. OFAC는 현금뿐만 아니라 디지털 자산, 비공식 스와프 등이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명시하면서 이란 적신월사(IRCS)나 이란 대사관 계좌로의 자선 기부금 형태로의 지급도 제재 위험 대상에 포함했다.
정병하 외교부 장관 특사와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이 22일 면담했다. 사진 이란 외무부
외교가 안팎에서는 해당 조치가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한국 선박의 안전 보장을 위한 이란과의 소통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경고문은 이란으로 들어가는 자금을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폭넓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외교부가 조현 외교부 장관이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과 통화해 중동 상황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히면서 “이란 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대화라는 점을 명시한 것도 이러한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러한 기류는 미 국제정치학자 글렌 스나이더가 1984년 학술지「월드 폴리틱스」에서 밝힌 ‘동맹국 간 안보 딜레마’ 이론과 맞물려 읽힌다. 미군 감축으로 대표되는 ‘방기(Abandonment)’에 대한 두려움과 미국발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연루(Entanglement)’에 대한 공포가 상존하는 모순적 상황이 닥친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란 전쟁은 한국이 동맹의 안보 딜레마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일종의 예고”라며 “한반도와 근접한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유사시 등 이런 딜레마는 언제든 불거질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