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반도체만 노조냐”…비반도체 탈퇴 붐

중앙일보

2026.05.03 08:16 2026.05.03 13:2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삼성전자 노조 요구안이 반도체 부문에 편중되자 비반도체 부문 노조원들의 이탈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노조원들이 평택사업장 일대에서 결의대회를 하는 모습. 김경록 기자

삼성전자 노조 요구안이 반도체 부문에 편중되자 비반도체 부문 노조원들의 이탈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노조원들이 평택사업장 일대에서 결의대회를 하는 모습. 김경록 기자

삼성전자 가전·모바일(DX) 부문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탈퇴 행렬이 이어지며 내부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초기업노조)의 요구안이 반도체(DS) 부문의 성과급에 치중되면서 소외감을 느낀 비(非)반도체 완제품 부문 직원들이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 이탈이 확산하면서 노노(勞勞)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 노조인 초기업노조 홈페이지에는 노조 탈퇴를 신청하는 게시글로 도배되고 있다. 평소 하루 100건 미만이었던 탈퇴 신청은 이달 2일까지 최근 10일간 2500건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홈페이지에 게재되는 전체 조합원 수 기준으로 봐도 약 7만6045명(지난달 29일)에서 7만4750명(지난 2일)으로 3일 만에 1300명 이상 급감했다. 초기업노조 출범 이후 이례적인 규모의 ‘집단 이탈’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갈등의 도화선은 극명하게 엇갈린 실적과 그에 따른 보상 격차다. DX 부문은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인한 원가 부담의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3조원)이 전년(4조7000억원) 대비 36% 줄었다. 반면에 DS 부문은 같은 기간 53조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홀로 전사 실적을 이끌었다. 노조의 요구안(영업이익 15% 배분, 지급 상한 폐지)을 1분기 실적에 대입하면 단순 계산 시, DS 소속 직원은 1인당 분기당 1억340만원을 받는다. 반면에 DX 직원은 890만원 정도에 그친다. 보상 간극이 11배 이상 벌어진다. DX 부문 노조원 A씨는 “DX는 ‘희망퇴직’ 얘기가 도는데 DS는 1년에 6억원 성과급 얘기가 나온다”며 “사실상 DS 부문의 들러리만 서는 것 같아 파업도 반대했다”고 했다. 또 다른 DX 조합원은 “적자를 내는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도 DS 소속이라는 이유로 고액 성과급을 받는데, 흑자인 DX는 소외되는 것이 맞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노조의 운영 방식도 갈등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노조는 쟁의 기간 조합비를 월 5만원으로 인상하고, 총파업 기간 노조 스태프 활동가들에게 수당 3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다. ‘내 이익은 대변해 주지도 않으면서 조합비만 뜯어간다’는 불만이 나온다.



“삼전 목표주가 32만→30만원 하향…이유는 노조리스크”

최근 도입된 ‘체크오프(급여 자동 공제)’ 제도로 노조 가입 사실이 회사에 노출되는 것을 꺼린 직원의 이탈도 한몫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반도체만의 노조로 잘 해봐라” “결국 당신들(DS)이 휘두른 칼에 당신들이 맞고 쓰러질 듯하다” 등의 탈퇴 인증 글이 쏟아지고 있다. 또 다른 DX 직원은 “노조가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서 DX 직원들이 탈퇴하는 것”이라며 “노조 안건과 소식을 DS에만 공유하고, DX 사업장에는 홍보 활동은 전무한 데다 질의도 대답을 안 해준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사업 사이클과 이익 구조, 성격이 다른 DS와 DX를 ‘성과급’이라는 단일 동력으로 묶으려고 한 시도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해관계가 크게 다른 조직이 하나의 노조 틀 안에 묶여 있다 보니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특정 이념으로 결속된 타기업 기존 노조와 달리 보상이라는 실리적 가치로 탄생했다는 태생적 한계도 있다. ‘실리’로 호감을 산 초기업노조가 예상을 깬 강경 파업 노선으로 선회한 것이 반감을 샀다는 분석도 있다.

생산직·연구직 간의 ‘직군 간 갈등’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석박사 연구직과 생산직이 동일한 성과급을 받는 것이 공정하냐”는 주장과 “현장 인력의 기여를 폄하하는 것 아니냐”는 반박이 맞서는 양상이다. 초기업노조 역시 생산직 비중이 높은 DS 부문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사업부의 가입률이 79.8%로 가장 높다. 익명을 요구한 10대 그룹 임원은 “성과급 규모가 커질수록 조직 단위가 아니라 개인·직무별 기여도를 반영한 보상 체계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한편 글로벌 투자은행(IB) 씨티그룹은 ‘노조 리스크’에 따른 비용 부담을 이유로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기존 32만원에서 30만원으로 낮췄다. 씨티그룹 피터 리 애널리스트는 최신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예고와 영업이익의 15%에 달하는 성과급 요구가 현실화할 경우 막대한 충당금 설정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이 경우 2026·2027년 영업이익이 당초 추정치보다 각각 10~11% 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투자의견 ‘매수(Buy)’는 유지했다.

AI 확산으로 메모리 수요가 공급을 구조적으로 초과하는 ‘수퍼 사이클’이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노조 리스크 외에도 향후 주가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들로 ▶경쟁사의 공격적인 설비투자에 따른 가격 압박 ▶원화 강세 전환에 따른 환차손 발생 가능성 ▶주요 고객사별 HBM4 양산 승인 시점 등을 지목했다.





김수민.박영우([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