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게 당신은 클래식 애호가가 맞지 않냐고 물으면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도 음악을 듣는 건 맞지만, 특별히 선호하는 장르는 없다. 나는 바흐와 베토벤을 좋아하고 나훈아와 조용필도 좋아하며 팝송도 좋아한다. 사람과 장소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에 감탄하는 유형이다. 사춘기 시절 깜박 버스 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을 때 승객은 나 혼자였다. 차창으로 쏟아지는 봄볕은 따뜻했고, 나훈아의 ‘고향역’은 적당히 취한 아버지의 노래처럼 평화로웠다. 그때 주름진 얼굴의 기사 아저씨는 약간 늘어진 테이프를 듣고 있었는데 그와 노래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그때의 느낌은 목적지를 놓친 낭패감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창밖으로 새싹이 갓 돋은 산과 논밭이 스쳐 지나갔다. 계절은 어김없이 오갔고, 세상은 편안했다. 버스를 타기 전 나는 불안으로 초조했던 청춘이었다.
모든 음악에는 이야기 담겨 있어
경영자로 변신한 음악인 장한나
삶을 위로하는 서사 만들어내길
생각하면 내 기억 속에 흐르는 모든 음악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음악은 풍경과 그때의 느낌만 명료하다. 초등학교 하굣길 수도원 담 위에 올라 버찌를 먹으며 듣던 수녀들의 성가, 어린 시절 처음 본 진공관 앰프에서 만난 베토벤, 이스탄불의 노을이 지던 저녁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던 아잔, 방황하던 젊은 날 거리에서 들었던 조동진, 영어를 팝송으로 배우던 시절 시로 읽었던 레너드 코헨, 배낭여행 길 강원도에서 듣던 촌로의 정선아리랑, 심지어 파도나 바람도 음악으로 남아 있다. 어느 겨울 버스 정류장에서 추위로 동동거리던 발이 노란 불빛의 빵집에서 흐르던 캐럴에 춤을 추듯 박자를 맞추던 기억도 있다. 케이크 상자를 들고 가던 사람들을 축복하고 싶은 밤이었다. 매 순간 음악은 내 생의 위로였다. 그리고 생의 전환기마다 음악이 있었다.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계기는 다양하다. 음악에 아무 관심이 없다가 어느 순간에 ‘노출’되기도 한다. 한동안 아마추어 음악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저마다 노출의 순간이 달랐다. 우연히 공연장에 갔다가 흥미를 느낀 이도 있었고 영화에 흐르던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입문한 이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은 이는 없었지만 모두 열심이었다. 음악을 지식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었지만, 뒤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거액을 들여 해외 공연 원정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다 오디오에 빠져 기계음까지 잡아내는 신통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음악을 듣는 건지 소리를 듣는 건지 모를 지경까지 이르렀다. 클래식이 특정 계층에 머물렀던 것은 옛말이 되었다. 일반 대중도 일상에서 영화나 드라마, 광고의 고전음악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있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취미가 된 음악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자유롭게 해석할 수도 있다.
올해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장한나가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만성적인 적자와 낮은 객석 점유율을 지적하면서 예술의전당을 ‘예술의 명소’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음악가에서 행정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기쁘면서 동시에 걱정스러웠다. 그를 기용한 측은 그의 세계적인 인맥과 현장 경험을 높이 샀을 것이다. 사실 그는 여러 행사에서 진취적인 지도자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음악가가 아닌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할 행정기관장의 위치다. 예산은 한정된 범위 안에서 집행해야 하고 공연기획은 몇 년의 준비가 필요한데 임기는 3년에 불과하다. 연임되지 않는다면 변화의 바람이 미미할 수도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모든 예술은 전적으로 무용하다는 ‘예술의 무용성’을 언급했다. 예술은 실용적인 목적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한나가 예술가의 시선에서 이익을 산출하는 경영자의 관점으로 넘어가는 일이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클래식 전용의 예술의전당은 이제 탈 장르의 변화가 필요하다. 장한나의 첼리스트에서 지휘자로의 변모는 “현미경에서 망원경으로”의 관점 이동이었다. 나는 그가 음악의 경계를 넘어 스토리텔링, ‘이야기하는 자’가 되기 바란다. 예술과 행정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다 해도 장한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