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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법 사금융 단속 강화하되 금융시스템 근간 흔들어선 안 돼

중앙일보

2026.05.04 08:24 2026.05.0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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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법정 허용치를 초과하는 불법 대부는 갚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취지의 글을 X(옛 트위터)에 올렸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불법 사금융 피해 방지를 강화한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SNS에 공유하자 이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에 발맞춰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사흘 연속 SNS를 통해 “한국 금융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 신용등급은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고 밝혔다. 악성 불법 대부와 금융 양극화 해소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나 이런 선의가 자칫 금융의 기본 원리를 흔들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신용은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핵심 수단이다. 신용등급을 계급장에 비유하며 신용 규율을 흔들 경우 금융기관은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미 금융권의 연체율과 부실채권에는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취약계층 보호라는 명분이 앞서 금융 시스템 전체의 안정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우리 금융 체계에는 이미 취약차주를 위한 다층적 보호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 과거 연 60%를 웃돌던 법정 최고금리는 2021년 이후 20%까지 낮아졌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상당한 규모의 선별적·조건부 채무조정을 시행 중이다. 7년 이상 장기 연체 부실채권 정리와 원금 감면 등을 통해 100만 명 이상의 재기를 돕고 있으며,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최대 20조원 규모의 채무조정도 진행되고 있다. 취약계층을 돕는 ‘포용금융’의 일환이다. 중금리 대출인 햇살론 등 정책금융 역시 매년 10조원 이상 공급되며 중·저신용자의 숨통을 틔우고 있다.

이억원 위원장이 사례로 제시한 연이율 4149% 같은 악성 불법 사금융은 국가 공권력을 총동원해 엄단해야 마땅하다. 피해자 구제 절차 또한 더 신속하고 전향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와 성실 상환자 역차별 우려가 나와선 안 된다. 금리는 신용에 대한 비용이므로 성실히 상환하는 차주가 존중받지 못한다면 금융 시스템의 신뢰는 무너진다. 한계에 내몰린 취약계층이 불법 사금융에 의존하지 않도록 더욱 촘촘한 금융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포용금융은 견고한 금융 시스템 위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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