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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빠르고 배부르다”…고물가 시대가 만든 ‘버거 역주행’ [비크닉]

중앙일보

2026.05.04 14:00 2026.05.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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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끼인 햄버거 판매가 늘었다. 주요 햄버거 프랜차이즈(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 KFC코리아, 맘스터치 등)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고물가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끼인 햄버거 판매가 늘었다. 주요 햄버거 프랜차이즈(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 KFC코리아, 맘스터치 등)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서울의 직장인 박효진(33)씨는 최근 점심 메뉴로 햄버거를 자주 찾는다. 회사 주변 식당 한 끼 가격이 1만원 안팎까지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고 빠르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서다. 점심값 부담이 커진 고물가 시대, 햄버거가 직장인과 학생들의 대표적인 가성비 외식 메뉴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주요 버거 프랜차이즈들도 최근 실적으로 웃었다.

왜 지금 버거인가…외식 불황 속 역주행

국내 버거 업계는 올해 공개된 지난해 실적에서 성장세를 입증했다.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는 지난해 매출 1조1189억원을 기록하며 8년 만에 다시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맘스터치는 연결 기준 매출 4790억원을 기록했고, 전국 가맹점 기준 소비자 결제액은 처음으로 1조58억원을 돌파했다. 버거킹 운영사 BKR은 지난해 매출 8922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KFC코리아 역시 매출 3780억원으로 최대치를 새로 썼다. 한국맥도날드는 지난해 실적을 아직 공식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가장 최근 공개된 2024년 실적에서는 8년 만에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런 성장세가 주목받는 건 외식업계 전반이 동시에 침체를 겪는 시기에 나왔기 때문이다. 원재료비·인건비 상승과 소비 위축이 겹치면서 카페·분식·주점 등 다른 외식 프랜차이즈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버거 업계 주요 브랜드가 대부분 성장세를 이어갔다. 경기가 나빠질수록 오히려 수요가 몰리는 ‘방어형 외식 업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가격·포만감·속도…고물가 시대 현실적 선택지
배경은 단순하다. 밥값이 너무 올랐다. 최근 몇 년 사이 직장인 밀집 지역에서는 1만원 이하 점심을 찾기 어려워졌고, 김밥·국밥·칼국수 같은 서민 음식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

고물가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끼인 햄버거 판매가 늘었다.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는 지난해 매출 1조1189억원을 기록하며 8년 만에 다시 매출 1조원을 넘어섰고 맥도날드는 2024년 실적에서는 8년 만에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연합뉴스

고물가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끼인 햄버거 판매가 늘었다. 롯데리아를 운영하는 롯데GRS는 지난해 매출 1조1189억원을 기록하며 8년 만에 다시 매출 1조원을 넘어섰고 맥도날드는 2024년 실적에서는 8년 만에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연합뉴스


그 틈을 버거가 파고들었다. 세트 메뉴 기준 7000~9000원대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앱 쿠폰이나 할인 행사까지 활용하면 부담은 더 낮아진다. 메뉴판만 봐도 얼마를 쓸지 미리 알 수 있다는 것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장점이다. 배달비 부담이 커지면서 직접 매장을 찾거나 포장하는 수요도 버거 매장으로 흘러들고 있다.

속도도 빠르다. 주문 후 대기 시간이 짧고 이동 중에도 먹기 쉬워 점심시간이 빠듯한 직장인과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 드라이브스루, 배달, 포장까지 이용 방식도 다양하다.

서울의 대학생 주은정(24)씨는 “학교 주변 식당들도 가격이 많이 올라 요즘은 버거 세트 메뉴를 자주 찾게 된다”며 “가격 부담이 덜하고 빨리 먹을 수 있어 공강 시간이나 시험 기간에 특히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버거킹 운영사 BKR은 지난해 매출 8922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KFC코리아 역시 매출 3780억원으로 최대치를 새로 썼다. 연합뉴스

버거킹 운영사 BKR은 지난해 매출 8922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KFC코리아 역시 매출 3780억원으로 최대치를 새로 썼다. 연합뉴스


셰프 버거 속속 출시…제대로 된 한 끼 강조
버거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한때 ‘정크푸드’로 불리던 햄버거가 최근에는 한 끼 식사로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감자튀김이나 탄산음료 대신 샐러드나 제로 음료를 선택하는 방식이 퍼지면서 건강을 챙기는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예전보다 낮아졌다. 특히 단백질 섭취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버거 패티를 활용한 식사가 과거보다 부담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요 확대에 맞춰 업계도 신제품 경쟁과 브랜드 리포지셔닝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처럼 단순히 가격 할인이나 신메뉴 출시만으로 승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버거도 충분한 한 끼 식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마케팅 전략이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롯데리아는 올해 초 선보인 ‘통다리 크리스피 치킨버거’가 출시 2주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개를 돌파했다. 큼직한 치킨 원물을 내세워 식사 대용 메뉴라는 점을 강조한 사례다. KFC는 핸드메이드 텐더에 버터 갈릭 라이스를 더한 ‘켄치밥(치킨+밥)’ 2종을 출시하며 점심 수요를 겨냥했다. 셰프 최현석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가성비와 미식 이미지를 동시에 노렸다.

브랜드 이미지 고급화 경쟁도 이어지고 있다. 맘스터치는 셰프 에드워드 리와 협업한 한정 메뉴로 화제를 모으며 누적 판매량 600만개를 넘어섰다. 버거킹은 유용욱 셰프와 협업한 ‘스모크 비프립 와퍼’ 등 신제품 3종을 출시했고, 약 3주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개를 돌파했다. 가성비 와퍼와 셰프 협업 메뉴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풀이된다. 맥도날드는 최근까지 지역 농산물과 특산 식재료를 활용한 ‘로코노미(Local+Economy)’ 메뉴를 선보이며 국내산 재료와 지역 상생 이미지를 강조해왔다. 업계에선 버거 브랜드들이 가격 경쟁을 넘어 품질과 경험 소비를 강화하며 ‘정크푸드’ 이미지를 벗고 일상 식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려는 경쟁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안 식사 넘어 일상 식사로…구조적 변화 시작됐나
외식 선택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과거에는 “뭘 먹을까”가 먼저였다면, 요즘은 “얼마를 쓸 수 있나”가 먼저다. 그 예산 안에서 포만감과 만족도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메뉴를 찾다 보니, 가격과 품질이 일정한 프랜차이즈 버거가 수혜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맘스터치는 셰프 에드워드 리와 협업한 한정 메뉴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맘스터치

맘스터치는 셰프 에드워드 리와 협업한 한정 메뉴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맘스터치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이 맛이나 브랜드 이미지보다 가격 대비 만족도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며 “버거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포만감과 편의성을 함께 제공하는 메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단백질 섭취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햄버거를 한 끼 식사로 받아들이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며 “고기를 따로 조리해 먹는 것보다 간편하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또 “청소년뿐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소비층이 넓어지고 있는 만큼 이런 흐름은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물론 그늘도 있다. 프랜차이즈 버거 가격도 꾸준히 오르면서 버거마저 부담스럽다는 소비자 반응이 나오고 있다. 원재료비·인건비 상승에 따른 수익성 관리는 업계 공통의 숙제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은 이 흐름이 단기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에 주목한다. 외식 물가가 단기간에 크게 낮아지기 어렵고, 1인 가구 증가와 간편식 선호 문화도 계속 확산하고 있어서다. 점심값 1만원 시대, 햄버거는 이제 대안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한 끼가 됐다.
b.이슈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이슈를 건져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시대와 호흡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기업을 조명합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이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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