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24일은 석탄일, 즉 부처님 오신 날이다. 관람객 수에서 세계 5위를 기록했다는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사유의 방이 있다. 거기에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두 점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중앙박물관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는 전시이다.
나는 중앙박물관에 가면 이 사유의 방에 매번 들른다. 제자가 묻는 바 없이 묻고 부처님께서 답하는 바 없이 답하듯, 거기에 온 많은 이들의 묻는 바 없는 물음에 반가사유상이 말하는 바 없이 말하는 듯해서이다. 내게 그 반가사유상은 왕자로 태어나 일주일 만에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고 깊은 숙고에 잠긴 싯다르타 왕자이다.
경제와 의학 아무리 발전해도
상대 빈곤과 죽음 해결 어려워
2600년 전 부처 오신 뜻 새겨야
싯다르타는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 출가를 결심하였다. 사유의 주제는 생노병사였다. 고뇌하는 청소년기를 보낸 싯다르타의 모습을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 한다. 동서남북 네 문으로 유희하러 갔다가 각각의 문에서 노인·병자·죽은 자·출가자를 본 것이다.
싯다르타는 출가를 반대하는 아버지 정반왕에게 말했다. “죽지 않는 길을 가르쳐 주면 출가하지 않겠습니다.” 이 얼마나 근원적 문제 제기인가! 생사(生死)가 있으면 생사가 다함도 반드시 있으리라는 논리적 확신에 힘입어 싯다르타는 집을 나왔다.
6년간의 긴 고행 끝에 마침내 고행도 쾌락도 아닌 중도(中道)의 길을 발견했다. 그 중도가 바른길이며 바른 깨침이었다.
그러나 우리들 보통사람의 삶은 생사보다 빈곤과 노병(老病)을 더 현실적 문제로 느낀다. 빈곤 문제는 더욱 시급하게 체감된다. 인류는 이에 어떻게 대처했는가? 절대 빈곤은 기계를 개발하여 인간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해결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산업혁명 때부터다. 뒤늦게 동참한 한국도 이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노병의 문제는 과학의 도약에 힘입은 의약의 비약적 발전을 토대로 병 치료를 넘어 저속노화 등 불로장생을 코앞에 둔 듯하다. 의약 산업이 불로장생을 추구하자 엄청난 자금마저 이 산업에 쏠리고 있다.
부처님은 이 문제를 어찌하셨던가? 부처님은 한 생에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이 아니다. 여러 생에 걸쳐 차근차근 노력하였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말씀한 생이 세 번이다. 그 처음이 ‘큰 약’이란 뜻의 마호사다 현자, 두 번째가 벳산타라 왕자, 마지막이 석가모니인 싯다르타의 생이다.
마호사다 현자는 약병을 손에 쥐고 태어나서 “어머니, 약입니다. 이 약은 어떤 병이라도 낫는 약이니,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이 약으로 고쳐주십시오” 하였다.
벳산타라 왕자로 태어났을 때 “어머니, 집에 무엇이 있습니까? 저는 보시를 하고자 합니다”라고 하자 어머니는 “마음대로 보시하십시오”하고 천금이 든 전대를 아기 손에 쥐여주었다.
자비심에 가득 찬 채 한 손에 약병을 들고 태어나 병든 이에게 좋은 의사가 되어주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시함으로써 가난한 이에게 감춰진 보배를 얻게 하며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왔다. 부처님은 이처럼 오랜 이타행으로 복덕을 쌓고 지혜를 향상시켜 마침내 일체지(一切智)를 얻고 자비와 지혜를 모두 갖춘 완벽한 인격체를 이루셨다.
부처님의 방식은 사회구조 변화나 기술 발전이 아니라 개인의 자발적 나눔과 인격도야였다. 현대로 올수록 부의 축적이 더욱 커지면서 개인의 자발적 나눔은 더 큰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절대 빈곤이 어느 정도 해결되어도 상대적 빈곤은 오히려 심화되고 정신의 영역으로까지 진입하고 있다. 노병 역시 수명은 늘어나지만 종국에는 죽음에 이름을 면할 수 없다.
빈곤과 노병 문제는 결국 그것에 대한 개인의 태도를 승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행복은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행복의 문제를 부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깨달음으로 해결하셨다.
2600여 년 전에 석가모니께서는 열반에 드셨다. 지금 부처님은 어디에 계신가? 부처는 깨달은 성품이다. 깨달은 성품은 천지(天地) 이전에 있었고 이후에도 있다. 선(禪)의 실질적 개창자인 혜능 스님이 말했다. “나에게 한 물건이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이름도 없고 글자도 붙이지 못하고, 뒤도 없고 앞도 없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알겠는가?” 이것을 알면 바로 눈앞에 참으로 부처님이 오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