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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의 뉴스터치] 킹스 스피치

중앙일보

2026.05.05 08:08 2026.05.0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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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봉 논설위원

신준봉 논설위원

2010년 영화 ‘킹스 스피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국왕 조지 6세의 이야기다. 형 에드워드 8세가 이혼녀와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하는 바람에 졸지에 왕이 된 조지 6세는 말더듬증을 극복하고 전쟁 독려 라디오 연설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실제 그의 말더듬증 정도에 대해서는 증언이 갈리는데, 영화적 과장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조지 6세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국 배우 콜린 퍼스는 미 CBS의 ‘60 Minutes’에 출연해 “가슴이 미어졌다(heartbreaking)”고 표현했다.

최근 영국 국왕 찰스 3세는 외할아버지 조지 6세와는 정반대되는 면모를 보여줬다. 미국 독립 250주년에 맞춘 국빈 방문에서 행한 두 차례의 ‘킹스 스피치’에서다. 고사(故事)를 활용한 유머와 고풍스러운 상류층 영어(vintage upper-class English)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국이 독립한 250년 전’을 영국에서는 “바로 며칠 전(just the other day)”이라고 표현한다는 농담이 그런 사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꼽은 설득의 3요소 가운데 하나인 파토스(청중의 감정)에 호소한 셈인데, 영국에 비하면 일천한 역사에 대한 미국인들의 잠재된 열등감을 불쑥 건드려 웃음을 자아냈다.

웃음은 지성에 호소한다고 한 이는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이다. 냉정한 상태여야 유머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찰스 국왕이 연설한 백악관 만찬이나 상·하원 합동 의회의 집중도는 무척 높았을 것이다. 연설 도중 웃음이 많이 터져 나왔던 이유다. 수사학을 풍성하게 발전시킨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는 정치적 설득에 있어서 웃음의 효능을 특히 강조했다.(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안재원 교수) 분명히 공격받고 있는데도 얼굴 붉히는 반응 외에는 어쩌지 못하게 하는 힘이 웃음에는 있다는 것이다. 실제 찰스 국왕의 연설은 트럼프의 민감한 대목을 건드렸다. 행정권(executive power)은 견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트럼프 측에서 문제 삼지 못했다는 외신 분석들이 나온다. 바닥 수준인 우리의 정치 언어가 떠올라 부끄러워지는 건 기자뿐인가.





신준봉([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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