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에게도 일종의 ‘신분증’이 있다. 귀에 달린 노란 표식, ‘귀표’다. 출생·이동·도축 이력이 담겼다. 키우던 한우의 귀표를 바꿔 달아 병에 걸려 도축한 것처럼 속이고 보험금을 타낸 축산업자와 이를 도운 수의사 등이 무더기로 붙잡혔다. 이들은 정부가 축산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귀표를 보험 사기 수단으로 악용했다.
전북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6일 “가축재해보험금을 가로챈 혐의(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로 A씨(40대)를 비롯한 축산업자 7명과 수의사 B씨 등 8명을 검거해 주범 A씨를 구속, 공범 7명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 등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군산·김제·고창 일대 한우 농가 8곳을 운영하며 총 245차례에 걸쳐 약 4억4000만원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소에 보험 가입 소의 귀표를 바꿔 달아 ‘보험 대상’으로 둔갑시키고, 질병이 없는 소를 ‘긴급 도축’한 것처럼 꾸몄다. 이후 공모한 수의사를 통해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보험금을 청구했다. 긴급 도축은 가축이 질병에 걸리면 진단서를 첨부해 도축하는 절차다.
유성민 전북경찰청 광역범죄수사2계장이 6일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가축재해보험금을 가로챈 혐의(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로 A씨를 비롯한 축산업자 7명과 수의사 B씨 등 8명을 검거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 전북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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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된 소 DNA와 귀표 정보 불일치”
귀표는 가축과 축산물 이력관리에 관한 법률(축산물이력법)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소·돼지 등 가축 한 마리마다 부여한 고유 번호(개체식별번호)를 표시하기 위해 문자·숫자·바코드 등을 적어 귀에 붙이는 것을 말한다. 귀표 미부착 가축은 유통될 수 없고, 도축도 금지하고 있다.
A씨 등은 보험사 의심을 피하기 위해 여러 축사로 나눠 보험금을 분산 청구했다. 경찰은 범행이 장기간 반복된 점에서 역할 분담이 이뤄진 조직 범죄로 봤다. A씨 등은 수사 초기에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도축된 소 DNA(유전자)와 귀표 정보가 일치하지 않은 점 ▶폐렴으로 도축됐다는 주장과 달리 폐 부위가 정상적으로 유통된 정황 등 객관적 증거를 토대로 혐의를 입증했다.
가축재해보험은 자연재해나 질병으로 인한 농가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제도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실물 귀표를 교체하면 개체 식별이 어려운 데다 진단 절차에도 허점이 생겨 비슷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유성민 전북경찰청 광역범죄수사2계장은 “귀표를 이용한 보험 사기는 구조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개별 농가가 직접 귀표를 부착하는 관행을 개선하고 재발행된 귀표에 대해서도 관리·감독을 강화하도록 관계 기관에 요청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