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프트한자, 터키항공 등 글로벌 항공사 여객기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공항에서 이착륙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6월 초 해외여행을 떠나려던 직장인 이 모(43) 씨는 최근까지도 항공편 예약을 하지 못 했다.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항공권 가격 때문이다. 대한항공 인천~로스앤젤레스(LA) 왕복 항공편은 3월만 해도 230만원에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달 초 알아봤더니 270만원이었다. 최근 가격은 290만원까지 뛰었다. 김 씨는 “LA·런던·파리 같은 장거리 항공편 가격이 특히 많이 올랐다”며 “동남아든 국내든 여행 목적지를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高)유가 여파가 항공 업계부터 강타했다. 일명 ‘에어 쇼크(Air Shock)’다. 항공 산업은 비용의 20~30%를 연료가 차지하는 대표적 에너지 민감 산업이다. 오일 쇼크의 영향을 가장 먼저 알리는 ‘탄광 속 카나리아’처럼 곳곳에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항공 비수기가 끝나는 5월은 여름 성수기(6~8월)를 앞두고 항공편 예약이 급증하는 시기다. 그런데 급등한 항공유 가격이 5월 특수(特需)에 찬물을 끼얹었다. 6일(현지시간)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텍사스·루이지애나 등에서 거래하는 항공유 현물 가격이 지난달 24일 기준 갤런당 4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첫 거래일(1월 2일)에 갤런당 1.9달러에 거래하던 것과 비교해 2배 수준이다.
항공사는 유가 상승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기본 운임에 추가로 ‘유류할증료’를 부과한다. 당장 국내에서 1일부터 발권하는 국제선 항공권에 유류할증료 체계상 최고 단계(33단계)를 적용한다. 33단계를 적용하는 건 2016년 이래 처음이다. 지난달 18단계에서 한 달 만에 15단계 올렸다. 대한항공은 이달부터 편도 기준 최소 7만5000원에서 최대 56만4000원의 유류할증료를 부과한다. 전쟁 발발 이전에 정한 3월 유류할증료와 비교해 5배 이상 뛰었다.
실제 이날 10월 중순 출발하는 대한항공 인천~뉴욕 왕복 항공편을 예약할 경우 운임은 177만2200원이다. 세부 항목별로 운임 67만4800원, 세금 13만5000원, 유류할증료 95만2400원, 발권 수수료 1만원이다. 유류할증료가 운임보다 비싸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불만이 나온다. 하지만 국내 한 항공사 관계자는 “유류할증료 인상분이 급증하는 항공유 가격 부담 상승분을 온전히 상쇄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공사마다 각자도생에 한창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루프트한자·터키항공·에미레이트항공 등 글로벌 항공사가 이달 운행 계획에서 약 200만 석을 줄이고, 1만2000편 이상 항공편을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기존 대형 항공기(에어버스 A350 등)를 투입하던 노선에 중·소형 항공기(보잉 787등)를 대체 투입하고 있다. 하루 여러 편 운항하던 노선은 통합 운영하는 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항공 수요가 줄어든 게 아니라 항공유 가격 부담에 따른 ‘의도적 감축’이란 측면에서 위험 신호다.
버티다 못해 문을 닫는 저비용항공사(LCC)도 나오기 시작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대표 LCC 중 하나인 스피릿 항공이 2일 영업을 종료했다. 1992년 창업한 스피릿은 좌석 지정, 수하물, 기내식, 와이파이 등 대부분 서비스를 유료화하는 대신 값싼 항공권으로 승부하는 전략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급등한 항공유 부담은 버텨내지 못했다. 로이터 통신은 “미국·이란 전쟁과 관련한 항공업계의 첫 희생자”라고 짚었다.